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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무례한 세상을 품위 있게 살기

말짱한 오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지나던 태양이 온 세상을 찬란하게 비추던 날이었다. 우람한 체구를 자랑하며 힘차게 달리는 픽업트럭을 따라 한적한 길을 조신하게 가고 있었다.  자동차 앞 유리에 물벼락이 쏟아졌다.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어디선가 날아온 물방울이 앞 유리창에 들이쳤다. 반사적으로 윈도 브러시를 움직여 차 유리창에 흩뿌려진 물방울을 닦아내면서 앞차를 보니 앞차의 윈도 브러시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앞차에서 유리창을 닦으려고 물을 뿜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른하늘에 물벼락이 쏟아질 리가 없지 않은가? 무례했다. 어떻게 감히 나에게 그럴 수가 있는가? 차선을 바꾸고 속도를 올려 나에게 물을 뿌린 무례한 자동차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픽업트럭을 모는 무례한 운전자는 뒤에서 얼마나 황당한 일을 당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목사만 아니었다면 경적을 거칠게 울리고, 헤드라이트도 껐다 켰다 하면서 그 운전자가 뒤차에 얼마나 무례한 짓을 했는지를 알렸을 것이다. 아니면 그 차 앞으로 끼어들어 똑같이 물을 뿜어 소심한 복수라도 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목사인데 품위를 지켜야지.’ 꼭 목사가 아니더라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는 현대인에게 품위가 있다면 그 정도 무례함은 적당히 눈감아 줄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억지로라도 너그러운 마음을 품으니 훨씬 편안해졌다. 품위를 지킨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면서 가던 길을 갔다.  
 
그다음 날도 같은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또 물벼락이 쏟아졌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내 앞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물을 뿜는 자동차도 없었는데, 마른하늘에 물벼락이라니? 윈도 브러시를 작동시키면서 룸미러로 뒤를 보니 내 차를 따라오던 뒤차도 깜짝 놀랐는지 멈칫하더니 윈도 브러시를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무례한 사람이라는 누명을 쓸 차례였다. 내가 물을 뿜은 것이 아니라고,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내가 그렇게 무례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괜한 오해로 불필요한 다툼에 휘말리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았다.  
 
다행히 그 차의 운전자도 품위를 지키는 사람이었나 보다. 아무런 불만 표시 없이 그저 가던 길을 갈 뿐이었다. 그 물벼락의 정체는 며칠 후 밝혀졌다. 이번에도 같은 길을 달리고 있었다. 두 번이나 물벼락을 맞은 곳을 지날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어디선가 날아온 물방울이 유리창에 흐트러졌다.  여전히 날은 맑았고, 앞에서 물을 뿜을만한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범인은 길옆에 있는 공장에서 넘어온 물줄기였다. 공장을 드나드는 큰 트럭들을 청소하려고 틀어놓은 물인지, 시간 맞춰 나오는 스프링클러의 물인지는 모르지만, 사람 키의 두 배도 넘는 높다란 담장 너머에서 날아온 물줄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마터면 사소한 오해로 품위를 잃어버릴 뻔했다. 앞뒤 사정도 모른 채 앞차의 무례함을 탓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세상이 나에게 무례할 때가 있다. 그 무례함을 꾸짖기 전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사정을 헤아리는 여유를 갖자. 그 여유가 무례한 세상을 품위 있게 살게 해 줄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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