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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졸면 죽을 수 있다

“미스터 윤에게 베개를 가져다주시오.” 스미스 대령의 목소리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수십 년 전 이야기다. 모 공군부대의 월요일 참모 회의였다. 타원형 테이블 윗자리에 스미스 대령이 앉고 그 옆으로 참모들, 그리고 맨 끝에 안전관리 담당인 내가 앉았었다. 모든 사람의 눈이 나에게 쏠렸다.  
 
전날 밤에 잠을 잘 잤는데…. 왜 그렇게 졸렸는지 모르겠다. 밥을 먹기만 하면 졸린다. 식곤증인가. 내가 60대가 가까워지니 아마 갱년기 장애인지도 모른다. 남자도 갱년기 장애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참모 회의에서 내가 졸았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이 모이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몇 사람이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독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배가 아픈 눈치였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끙끙 앓다가 일을 저질렀다. 부대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 육해공군 기지의 안전 관리직 공석을 찾기 시작했다. 웬걸, 시애틀이나 샌디에이고 같은 노른자위는 벌써 그곳 터줏대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한 자리 공석이 있는 곳이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샌프란시스코였다. 주거비가 비싸고 교통이 불편해서 공석으로 남아있는지 오래되었다. 그곳 인사 담당에게 전화했다. 내일이라도 오라고 한다.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참모 회의에서 깜빡 졸았다가 나에게 베개를 가져다주라는 부대장의 핀잔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체면이 구겨지고 너무나 창피해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당신 정신 있는 사람이요. 어떻게 무턱대고 사직서를 제출해.” 아내는 기가 막힌 모양이다. 나는 말했다. 한국 사람은 체면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어느 기관장이 체면 때문에 자살했다는 뉴스도 들었다고 항변했다. “그렇다고 사직서를 제출하면 어떻게 해요.” 맞는 말이다. 나는 항상 일을 저질로 놓고 후회한다. 일자리 영역을 넓혀서 네바다와 애리조나주까지 알아보았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고등학교 학생인 막내딸에게 샌프란시스코 근교로 이사 가면 어떨까 물어보았다. 그는 친구들이 있는 이곳에서 졸업을 하겠다고 고집했다. 나는 혼자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방을 얻고 일하며 주말이나 집에 내려올까.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왜 그렇게 당돌해요.” 아내는 부대장이 사직서를 수락하는가 기다려보자고 한다.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 심판의 날이 왔네요.” 아내의 냉철한 머리는 나의 돌대가리보다 낫다. 지옥 같은 한 주가 지나갔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니 내 책상 위에 흰 봉투가 놓여 있다. 뜯어보니 부대장의 메모였다. 미스터 윤이 책임감을 느끼고 사직서를 제출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직서를 반려하니 앞으로 충실하게 근무해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부대장에게 달려가서 큰절을 올리고 싶었다.
 
졸다가 하마터면 밥줄이 끊어질 뻔했다. 졸면 죽을 수도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연설하는 옆에서 졸고 있던 인민군 고위 장성이 존엄 모독으로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기는 졸면 죽을 수 있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 또 있다. 아들이 대학 2학년 때다. 동생과 사촌들을 데리고 매직마운틴을 간다고 차를 빌려달란다. 뷰익 새 차였다. 그런데 밤늦게 돌아와서는 풀이 죽어 있었다. 종일 놀다가 늦게 저녁을 먹고 떠났단다. 피곤하고 졸음까지 몰려와 깜박 졸았다고. 차는 프리웨이 칸막이 철조망을 뚫고 들어갔지만 다행히 더 나아가지 않고 멈췄다. 반대 방향에서 오던 차와 충돌했으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다른 차와 충돌하지 않고 사람도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아들을 위로했다.  
 
어떻게 하면 졸지 않고 운전하는가. 운전하기 전 과식을 피해야 한다.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어오게 한다. 음악을 틀거나 옆 사람과 대화한다. 그래도 졸리면 안전한 곳에 주차하고 고양이 잠을 잔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상대방의 의사를 경청하기 위해서는 졸지 않아야 한다. 아내와의 대화에서 내가 경청하지 않고 졸았다고 가정해 보자. 집에서 쫓겨날지 모른다. 디지털 도구의 범람으로 사람과의 대화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시대에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기초 운전 교육을 정식으로 배워야 한다고 나는 강조한다. 운전학교 전문교사에게 운전을 배우는 것은 가장 값진 투자이다. 안전하게 운전하기 위해서는 차를 움직이는 기술뿐 아니라 안전의식, 다시 말해서 마음가짐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자동차는 우리에게 편리한 운송 수단이지만 잘못하면 살상 무기도 될 수 있다. 졸음운전도 그중 하나다.

윤재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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