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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20·30대의 ‘조용한 사직’ 이유 있다

진성철 경제부 부장

진성철 경제부 부장

20·30대 연령대인 ‘MZ세대’를 특징짓는 용어로 ‘파이어족’과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 있다.
 
‘파이어족’은 소비를 최소화하고 노동보다 투자 소득을 통해 경제적 독립과 조기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FIRE)를 추구하는 특징을 가리킨다.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는 본인의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조용한 사직’은 본인의 노력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직장을 관둔다는 뜻이 아니라 최소한의 업무만 하겠다는 의미다. 일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서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조직이나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걸 지양한다는 말이다.
 
워싱턴포스트(WP)지는 직장인이 개인 생활보다 일을 중시하고 일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더는 추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 전문매체 ‘더힐’은 ‘조용한 사직’을 코로나19로 인한 ‘대퇴직’(Great Resignation)의 연장이라고 봤다. 대퇴직은 2021년 초를 전후해 발생한 노동자의 퇴직 열풍을 말한다. 이를 두고 세대 간에 또 전문가 사이에서 원인과 정당성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캐나다 억만장자인 케빈 오리어리는 “조용한 사직은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끔찍한 접근법이며 성공을 거두려면 더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게으름을 조장하고 기업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도 있다. 또 최소한의 일만 하는 문화는 주변 직원들의 사기 저하도 초래할 수 있으며 직원 사이에 불공평함에 대한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MZ세대들은 ‘주는 만큼 일하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라며 반문한다. 초과근무 수당 없이 직장 상사의 인정을 받겠다고 야근을 했지만, 인사고과는 그런 노력을 배신했다고 한 직장인은 주장했다. 매니저 승진을 거부했다는 다른 직장인도 “매니저가 되면 받는 월급에 비해서 업무 책임은 물론 스트레스가 커지기 때문에 사양했다”며 “그 정도 돈을 받는다고 삶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용한 사직’은 한국의 신조어인 ‘N포 세대’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N포 세대는 돈이 충분치 않아서 연애·결혼·출산을 사치로 생각하고 내 집 마련과 사회적 인간관계마저 포기한 세대라는 의미다. N포 세대의 출연은 ‘부의 균등 분배’가 사라진 자본주의의 부작용이다. 결국 돈이 문제인 셈이다.
 
미국사회는 2000년 초만 해도 소득 격차는 컸지만, 중산층은 탄탄했다. 9시에서 6시까지 근무하고 노력하면 집도 살 수 있고 웬만큼 은퇴 자금 마련도 가능했다. 그러나 현 젊은 세대에는 꿈같은 상황이 돼버렸다.
 
현재 미국 젊은 층을 포함해 중산층의 재정 상태는 이전만 못 하다. 가주의 중간 소득은 약 6만 달러, 월 5000달러 수준이다. 1베드룸 아파트에서 살려면 소득의 절반을 내야 한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독신의 최소한 월 생활비는 1000달러 정도가 든다. 작년 가주의 평균 결혼 비용도 3만3000달러나 됐다. LA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면 연소득이 최소 15만 달러는 돼야 한다. 부부가 맞벌이한다고 해도 하우스 푸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또 1명의 자녀를 17세까지 키우는 데 31만 달러가 들어간다.
 
이렇게 각종 비용은 가파르게 올랐는데 소득은 제자리걸음이다.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실제 소득은 오히려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봤자 삶을 꾸리는 건 여전히 벅차다.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파이어족’도, ‘조용한 사직’도 이런 절망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진성철 /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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