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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미니 콘도에서의 삶

1층 정문 근처에서 만난 90대 할아버지 프렌치가 “하이” 하며 반긴다. “아픈 다리는 좀 어때요?” 몇달 전 넘어져 한동안 고생했다던 기억이 나서 물으니 올해 들어 더 쇠약해진 프렌치가 “좋아지고 있어요”라고 미소로 답한다. “지금 우리 ‘트레이더 조’로 장 보러 가는데 뭐 필요한 거 없어요? ”물으니 “그럼 딸기 한 팩만 부탁할게요”한다.
 
프렌치와 그의 아내 마지는 우리와 각별하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HOA(주택 소유자 협회)에서 이층 베란다 페인트를 새로 한다고 베란다를 비워 달라고 했었다. 그때 나는 크고 작은 20여 개의 화분을 갖고 왔었는데 그걸 다 치워야 할 판이었다. 저 화분들을 방안으로 들여놔야 하나 난감해하는데 마지가 선뜻 자기 집 데크로 내려다 놓으란다. 자기네 화분 물 줄 때 물도 줄 테니 걱정 말라면서…. 그렇게 우리는 마지네와 가까워졌다.
 
장을 보고 돌아오니 반쯤 열어 놓은 마지네 문 앞 탁자 위에 1달러짜리 지폐 대여섯장이 놓여있다. “여기 딸기 왔어요”하니 마지가 탁자 위를 가리키며 딸기 값이라고 한다. “선물이에요” “그러면 더는 부탁을 못하잖아요” “고작 딸기 한 팩인데, 다음에 두 개 사면 받을게요” “지난번 쌀국수 한 박스도 너무 고마웠는데…”
 
팬데믹 직전까지 줌바를 추러 다니던 멋쟁이 마지가 팬데믹 3년여 동안 많이 굽어진 등을 벽에 의지하며 환히 웃는다.
 


샌프란시스코의 큰 콘도단지에 살다가 단 7세대가 사는 이곳 초미니 콘도단지로 이사 온 것이 벌써 4년을 넘기고 있다. 빌딩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HOA에서 그때그때 회의를 열어 처리하고,  콘도 빌딩 앞에 우편물이 있으면 누구든지 처음 우편물을 본 사람이 도어 안으로 들여 놓아준다. 쓰레기 수거 날엔 6호에 사는 중학생 핵터가 지하 주차장에서 리사이클 수거통들을 길가로 올려다 놓고 다시 빈 통을 내려다 놓곤 한다. 달려나가 돕기엔 힘에 부치고 모른척하기도 부담스러웠는데 지난 HOA 미팅 때 핵터에게 감사의 뜻으로 기프트카드 선물을 주기로 결정했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적응이 안 돼 불편하던 이 작은 콘도가 나는 점점 좋아진다. 10년 동안 살았던 300세대 가까운 샌프란시스코 옛 콘도에는 옥외 수영장, 헬스장, 바비큐 시설, 컴퓨터 룸, 커뮤니티 센터 등이 있고 프론트 데스크엔 항상 스태프가 있었으며 우체부가 직접 건물 안 각자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어 주는 등 다 편리했었다. 게다가 매년 연말에는 커뮤니티 홀과 야외 바비큐 스탠드에서 고기를 굽고 테이크아웃 음식에 와인과 칵테일까지 거하게 주민파티를 열곤 했었다. 그러나 그날만 지나면 팬데믹 삶의 예행이라도 하듯 6피트 이상의 거리를 지키며 서로 나눈 인사가 급히 스치며 하는 “하이”가 고작이었다.
 
나는 서로 가족처럼 챙겨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총 7가구 미니콘도에서의 삶이 더없이 즐겁고 행복하다.

김찬옥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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