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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우리는 왜 말을 하는가

일정한 토픽 없이 그룹 세션을 시작한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화제를 포착하려는 의도에서 자유연상으로 의식의 흐름을 도모한다. 정신분석이 추구하는 다이나믹한 기법.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누군가 밖의 날씨가 참 좋다고 말한다. 야, 이놈아! 가을이라서 그런 거야, 하며 다른 환자가 거들먹거린다. 말을 꺼낸 당사자가 머쓱해서, “I was just saying! - 그냥 해본 소리야!” 한다. 제3의 사나이가 끼어들어, “왜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하며 볼멘소리를 낸다.
 
나는 얼른 묻는다. “Why do we talk? - 우리는 왜 말을 하지?” 로버트가 대뜸 ‘도움을 받기 위해서요’ 한다. 정보를 얻기 위함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구글 검색을 하면 될 텐데? 하기야 정신과 심리상담도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목적일 수 있지.
 
리차드가 저는 심심하거나 무료할 때 말을 한다고 심드렁하게 응답한다. 좀 냉소적이다. 당신과 나는 권태로운 순간을 이겨내기 위하여 남에게 말을 거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아무 경계심이 없는 마음으로 우리는 상대에게서 순간적인 삶의 활력을 차용하는 것이다.
 


혼잣말? 혼잣말은 마음을 가라앉혀 정돈시키고 목적의식을 북돋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보고가 많다. 단, 이를테면 맨해튼을 활보하는 노숙자들이 보여주는 저 쉬임 없는 혼잣말, 환청 증세가 난무하는 대화의 장은 결코 혼잣말이 아니다.            
 
유튜브를 통하여 한국 소식을 듣는다. 특정 정치인들의 행각에 신경이 쏠린다. 그들이 쏟아내는 신조어와 정치용어가 본질을 회피하는 언어의 쓰나미를 창출한다. 진실을 감추기 위한 거창한 말 잔치. 그들은 말을 하지 않기 위하여 많은 말을 쏟아낸다.
 
로버트는 다시 답한다. “나는 화가 나면 말을 합니다.” 그렇다. 우리는 분노가 치미는 순간에 저절로 말문이 열리기도 한다. 한이 북받쳐서, 서러움이 오래 쌓였다가 펑! 터지는 말, 말의 범람. 깊이 숨어있던 정서가 언어의 오솔길을 뜨직한 걸음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순간들.
 
‘catharsis’를 우리말로 그냥 ‘카타르시스’라 한다. ‘심리적 정화(淨化) 효과’!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가 언어를 통하여 해소되는 과정으로서 심리치료의 근간을 이룬다. 말에는 늘 카타르시스적 요소가 잠재한다.
 
카타르시스를 일상영어로 ‘vent’라 하는데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행위를 뜻한다. 환기, 탁한 공기를 맑은 공기로 바꾼다는 의미의 ‘ventilate’를 줄인 말이다. 15세기 초반 라틴어로 ‘바람에 날려 보내다’라는 뜻이었다. 맑은 심성을 위하여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마음속에 휴대용 통풍기를 달고 다녀야 한다.
 
나는 다시 다그쳐 묻는다. 밖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아무도 없는 병원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바삐 걸어와 옆에 나란히 섰을 때 나는 왜 앞만 바라보며 “굿 모닝!” 하고 인사를 하는가.
 
리처드가 응답한다. “We talk when we feel nervous. - 우리는 불안할 때 말을 합니다.” 나는 이쯤 해서 환자들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싶다. - “그렇다면, 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그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 “굿모닝, 나는 지금 불안한 마음 때문에 말을 합니다.” - 환자들이 일체 묵묵무언인 이 장면은 어디까지나 내 상상 속에서만 일어난 일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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