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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내일은 약속되어 있는가’

H작가님의 수필집을 받아 들고 눈이 고정된 곳은 책 제목이었습니다. ‘내일은 약속되어 있는가?’ 왠지 그 질문은 내게 던진 질문 같았습니다. 스스로 대답을 미루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부끄러워지고 있습니다. 고개를 드니 파란 하늘이 간간히 무리 지은 구름을 거느리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늘 아래 고개를 쳐든 한 사람이 보이고 사람의 모습은 점점 작아집니다. 그리고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이렇듯 미물인 우리에게 오늘이라는 하루를 허락한 것은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내일이 약속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고 만나는 사람도, 걸어야 할 길도 다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오늘은 마지막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심히 하루를 맞이하고 서쪽 하늘에 걸린 노을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냉냉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묻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듣고 배꼽을 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빌렸던 물건을 리턴하려고 가는 중에 생각해보니 그 물건을 안가져온 것을 깨닫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가는 중이었답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답니다.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다 왼 손을 보니 빌린 물건을 들고 있더랍니다. 신나게 박수를 치며 발을 구르며 웃었지만 그건 웃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울어도 시원찮을 일이었습니다. 내일은 약속되어 있는가?의 물음 앞에서 자꾸 작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기뻐해야 하고, 오늘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사랑한다고 말해야합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약속되지 않은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신호철

신호철

좋은 책을 선물로 주신 H작가님께 작은 선물로 보답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지금 소담스럽게 핀 노란 꽃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습니다. 둥그런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시들지 않는 꽃들을 찾아 한 송이 한 송이 항아리에 담고 있습니다. 꽃을 뒤적이다 보니 꽃이 다 똑바르게 피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어떤 것은 휘어져 있고 어떤 것은 아래로 구부러져 있습니다. 나는 H작가의 나이만큼 꽃을 항아리에 담았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의 꽃 또 하나의 꽃들이 만나서 항아리에 담겨지는만큼 세월이 지나고 한 인생이 항아리 속에 담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도 한 단어 한 단어가 모여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이 모여서 하나의 글이 되듯이 항아리에 하나의 글이 소담히 담긴 듯 보였습니다.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지나쳐 버리면 우리의 마음 속에 아무런 영상을 맺혀주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 관심을 가지면 그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아름 담겨진 꽃 항아리를 들고 H 작가님의 출판기념 장소로 가는 발걸음은 참으로 즐겁습니다. 서랍 안쪽에서 손바닥보다도 작은 하모니카를 꺼내서 닦고 있습니다. 열 개의 음 밖에는 낼 수 없는 아주 작은 하모니카입니다.  
 
H 작가님의 수필집 안에 수록된 ‘쇼팽의 야상곡 2’ 내용을 읽다가 마음이 뭉클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보고 있습니다. 아픔과 고통이라는 터널을 지나고 난 후 조용히 찾아오는 작은 행복도 느껴 보고 이제는 노년이 되어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 보며 쇼팽의 녹턴을 음미하는 H 작가의 모습에서 울컥했습니다.  
 
쇼팽의 피아노 연주곡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못하는 하모니카 연주라도 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차 속에서도 꺼내 불고 걸으면서도 불다 보니 이 하모니카 또한 인생이었습니다. 이 작은 악기소리에 행복도 슬픔도 있고 설레임도 그리움도 담겨 있습니다. 10개의 작은 통로를 통해 각기 다른 음으로 울리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하모니카 또한 하나의 인생이었습니다. 
 
낮은 음과 높은 음은 제 소리를 낼 뿐인데 어우러지면 누구도 만들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쇼팽의 피아노 야상곡, 마음을 저미는 깊은 울림에 비할 수 있겠냐만 좋은 책을 주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아 작은 하모니카를 통해 H작가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에델바이스의 꽃말처럼 남은 삶도 힘이 다할 때까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고귀하고 숭고한 글들을, 희노애락의 영롱한 꽃들을, 걸어가야할 황혼의 길가에 가득히 피워주시기를 바래봅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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