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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징검다리를 건너며

가뭄과 폭염으로 물과 전기 사용을 절제하며 힘겨운 여름을 보냈다. 지구촌의 다른 쪽에선 폭우와 태풍의 피해로 몸살을 앓았다.  
 
유난히 비가 많던 겨울이 생각난다. 물이 충만할 계곡을 그려 보며 폭포(Santa Anita Sturtevant Falls)를 찾아갔다. 예전에 다녀온 적이 있어 쉬운 코스로 생각하고 별다른 준비 없이 출발했다. 배낭엔 김밥과 물 두 병만을 넣은 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 산 정상에 가까이 다가가니 이미 주차장안 많은 등산객으로 꽉 찼다. 다시 산 중턱으로 내려가 길가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산을 향하는 마음이 기대에 부풀어 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젊은이는 삼삼오오 팀을 이루어 산행을 즐겼다. 아이와 이야기꽃을 피우며 손잡고 걷는 정겨운 가족도 눈길을 끌었다.  
 
평화롭던 산은 물소리로 꽉 채워졌다. 마음을 씻어주는 맑은 소리가 아닐까. 메말랐던 계곡에 물이 힘차게 흐르며 잠자는 겨울을 깨우는 생기가 넘치는 듯했다. 계곡물은 바위 등을 올라타 모난 돌을 둥그렇게 굴리며 넓은 세계로 흘러갔다. 곳곳마다 작은 폭포를 이룬 계곡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목적지인 폭포를 반 마일을 남겨놓고 폭우로 인해 불어난 계곡물이 덮쳐 예전에 있던 길이 끊겼다. 상황을 뒤늦게 알았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범람한 강을 가로질러 돌멩이가 드문드문 놓여 있었다. 어릴 적 냇가에 놓여 있던 징검다리였다. 처음에는 옛 생각에 정겹게 생각했지만, 물살을 쳐다보니 겁이 났다. 보폭보다 더 넓게 드문드문 놓인 징검다리 위를 건너야 했다. 미끄러지면 차가운 물 속에 빠질 것 같은 두려움에 나뭇가지를 찾아 지팡이로 삼았다. 세차게 흐르는 물살은 지팡이조차 삼킬 기세였다. 급기야 얼음이 녹은 물로 등산객이 입수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어떤 아저씨가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선 후 네 살쯤 된 딸을 번쩍 안아 건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환호했다. 딸은 용감한 아빠의 뺨에 볼을 비비며 사랑을 표현했다.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한 발씩 징검다리를 건너는 시도를 했다. 그때 갑자기 뒤에 있던 남편이 물에 들어가 내 손을 잡아주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반가운 손길이었던지. 그는 나의 흑기사가 되었다. 차가운 물은 남편의 무릎까지 차올랐다. 거센 물살 때문에 혼자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그는 물속에서 나는 징검다리 위로 손을 잡고 호흡을 맞추며 건넜다. 물가에서 지켜보던 사람의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How sweet your husband is!” 남편이 아주 커 보였다.  
 
물을 건너기 위해 모든 사람이 불평 없이 차례를 기다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아량을 보였다. 팔을 벌려 서로에게 힘이 되어 같이 가는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다운가 보다.
 
징검다리의 ‘징검’은 ‘징그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징그다’는 옷이 쉽게 해어지지 않도록 다른 천을 대고 듬성듬성 꿰맨다는 뜻이다. 듬성듬성 놓인 징검다리는 다리가 갖춰야 할 연결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용하는 사람에 의해 연결된다. 징검돌 사이를 연결할 때 인간의 몸은 스스로 상판이 되고 다리는 교각이 된다. 거센 물결 세상 위를 다리가 되어 함께 건너간다.
 
내밀어 잡아주는 손은 다리가 되어 세상을 유지할 것이다.

이희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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