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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시(詩)의 치유

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옛날의 시에는 문학과 음악의 경계가 없습니다. 시는 그대로 노래이고 음악이기도 했습니다. 시는 문학이면서 의학이기도 했습니다. 노래를 들으며 치유를 받는 것은 현재만의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말 그대로 치료의 도구로 시를 강력하게 사용했습니다. 요즘도 무속에서는 치유의 굿을 할 때 무가(巫歌)를 부릅니다. 시의 한자 역시 절[寺]에서 하는 말[言]임을 나타냅니다. 시가 우리에게는 몸과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치유인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의 신 아폴론이 의술과 시, 음악의 신이었음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시가 곧 치료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심리적인 치유에서 시의 역할을 매우 큽니다. 감정을 언어의 표현적 기능을 통해 표출합니다. 시를 듣거나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런 표출의 기능에 힘입은 것입니다. 물론 시를 보고 낭송하고 듣는 과정도 귀한 치유의 과정입니다.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치유, 낭송을 들으면서 다가오는 치유는 내 몸의 실핏줄까지 찌릿하게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언제 시를 읽었을까요? 최근에 시를 읽어 본 적이 있나요? 시집을 펼쳐 본 적은 있나요? 시집을 사 본 기억은 있을까요? 고등학교 이후에 시를 끊었다는 우스갯소리는 시와 우리의 거리를 보여줍니다. 저는 사람들이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시라도 가끔 다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시 속의 그리움과 추억이 우리를 치유해 줄지도 모릅니다. 물론 시집을 한 권 사서 읽어본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우리는 언제 시를 써 보았을까요? 써 본 적은 있을까요? 숙제라든가 아니면 전교생이 함께하는 백일장에서 의무감으로 시를 써서 제출한 적은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한 경우 본인은 자신의 시를 갖고 있지 않겠죠. 아무튼 자신이 쓴 시를 한 편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 씁쓸합니다. 시를 쓰는 게 스스로에 대한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일기를 쓰는 사람을 보면 일기 속에 시보다 아름다운 구절을 담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가 꼭 고정적인 형태로 쓰여야 하는 것은 아니니 일기장이든 메모장이든 자신을 위로한 구절이 남아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한 줄의 메모가 어느 날 문득 한 편의 시로 다시 태어나길 바랍니다. 시는 시인만 쓰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를 시로 위로하면 좋겠습니다.
 


 한편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시와 노래가 닮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예 시를 담은 노래가 있는 것도 다행입니다. 시를 노래로 만들면 시와 다른 감성이 우리를 위로합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들려주는 감동을 잊기 어렵습니다. 또한 때로는 시보다 더 시 같은 가사로 우리를 위로하는 노래가 있어 가슴을 울립니다. 노래 가사가 시가 아닐 이유가 없겠죠. 저는 늘 시가 고맙습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시는 무리일 것이라 미리 판단하지 말고 시를 가르쳐보면 어떨까요? 시를 가르치고 한국어로 시를 써 보게 하면 어떨까요? 만약 힘들다면 시 번역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외국인이 한국어로 시를 배우고 한국어로 시를 쓰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한국어로 쓴 시가 위로이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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