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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비난과 너그러움

우리 동네 올드타운 한적한 길에 늘 손님이 북적이는 식당이 있다. 교회 오가는 지름길이라 새벽마다 보게 되는데 몇 개의 주변 가게 앞까지 테이블을 길게 놓아뒀음에도 손님이 가득 차고, 특히 주일 아침은 기다리는 손님까지 합세해 식당 주변이 온통 잔칫집 같다. 코로나 전에 몇 번 간 적이 있지만 미국 음식이 그렇지 뭐, 하며 오래 뜸하다가 작년 말쯤 마음이 내켜서 들어갔다.  
 
가계 오픈하는 시간이라 직원들은 분주했고 분위기는 조금 어수선했지만, 세월이 한참 흐른 듯 감회가 새로웠다. 창 옆에 자리를 잡고 주문받으러 오기를 기다리며 가져온 신문을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조그만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양념통 사이에서 징그러운 바퀴벌레가 슬슬 기어 나왔다. 너무 놀라 벌떡 일어서며 직원을 불렀다. 도저히 음식 먹을 기분이 아니어서 멀뚱하게 바라보는 직원을 뒤로하고 식당을 나와버렸다. 그 집 앞을 오가며 사람들은 모르지, 저 집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사실을, 무슨 대단한 비리를 알고 있다는 듯 비난의 마음을 품었다.
 
그 후 눈길이 더 자주 머무는 그 식당은 변함없이 붐볐고, 친절하기가 짝이 없었던 오래전의 직원 진 할머니가 손님마다 일일이 포옹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몸이 아파서 대수술을 했고  크리스찬임을 자랑스럽게 밝히던 미국 할머니, 하이! 라도 하고 싶었지만 들어가서 먹을 것도 아닌데 싶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세월은 흘러 바퀴벌레 기억도 희미해져 가고, 아니 그 기억은 그만 접어버리자 마음을 다잡고 며칠 전 그 식당으로 쑥 들어갔다. 우리를 알아본 진 할머니가 그 특유의 환한 웃음으로 다가와 찐하게 포옹을 해댔다. 얼마 만이냐 어떻게 지냈냐 자기는 일주일에 두 번 일하는데 마침 너희들을 보게 되어 반갑다, 그녀의 못 말리는 수다가 이어졌다. 하지만 다른 손님이 들어오자 얼른 그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식당을 이만큼 올려놓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활달한 진 할머니, 그녀의 건강을 기원했다.  
 


직원의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지속해서 손님을 끌기 위해서는 역시 음식 맛일 것이다. 비슷한 메뉴를 가진, 내가 종종 가는 다른 식당의 음식과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그날따라 바퀴벌레의 기억을 상쇄할 만큼 서비스, 맛, 가격에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들이 바본가, 이러니까 오는 거지. 바퀴벌레가 있으면 어때! 정도는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혹은 다른 사람이 안 봐서 정말 다행이야 하는 너그러움도 살짝 들었다.
 
이번 일을 통해 시간을 통과하고 나면 상황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쁜 경험 혹은 기억으로 인해 좋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적은 없었는지, 더 나아가 누군가의 말만 듣고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나쁘게 판단한 경우는 없었는지 돌아보았다. 결점에 매여있다가 놓쳐버린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판단 받고 싶지 않듯이 그도 그랬을 것이다. 어! 그런 사람 아니었네! 하면 늦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를 폄하하고 싶을 때 그 누군가의 자리에 나를 세워보기로 한다.

오연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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