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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절절한 외침 ‘대한독립만세!’

내가 조소앙 선생에 대해 알게 된 건 부끄럽게도 근래의 일이다. 정치, 경제, 교육의 평등을 강조한 삼균주의의 이념을 바탕으로 선생은 대한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임시정부를 세울 때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을 만들었다는 데 그분의 행적에 대해 학교에서 배울 수는 없었다. 반공시절에 납북된 조소앙 선생의 업적을 언급했다가는 빨갱이로 몰렸을 테니 학생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가르치긴 어려웠으리라.
 
우연히 나는 LP판에 녹음된 선생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독립 후 처음으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외치던 그분의 음성 속에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아닌 진정으로 독립을 꿈꾸는 애국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감옥에서 죽어간 동료들의 복수를 하지 못한 분함 또한 느껴졌다. 그의 연설에는 배움이 없는 일반인일지라도 알아듣기 쉽도록 백성을 배려하는 따뜻함이 묻어있었다.
 
선생의 바람대로 지금은 대학은 물론이고 박사학위 소지자도 넘쳐나고 미각이 발달한 한국인의 한식문화가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집집마다 차 한 대씩 소유하는 경제만큼이나 높은 시민의식은 촛불집회로 증명했다. 아직 이루지 못한 건 남북통일이다. 분단의 비극이 100년이 넘지 않기를 바라며 76년 전, 조소앙 선생의 절절한 육성을 글로 소개한다.  
 
“얼마나 속을 태우며 원통한 세월을 참고 지내셨습니까? 위로할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결심하기는 나의 독립군을 앞세우고 보무당당하게 한성을 환국하여 일본 총독의 머리를 베여서 남산 위의 소나무에 걸로 300년 원수를 갚고 30여 년 동안의 분노를 풀고자 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슴이 터집니다. 그렇게 되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산천초목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스코바에서 상해에서 남경, 파리, 사천, 광동, 광서에서 삼일절을 맞을 때마다 결심하기를 명년에는 한성에서 이날을 맞이하자 하였소이다.  지금은 소원성취는 하였습니다마는, 내 흙을 밟고 서게 되었습니다마는, 눈앞에 어린 아기들을 보며 여러분과 함께 이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마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소이다. 여러분 삼천만 동포여! 힘껏 뜁시다. 마음대로 웃읍시다. 힘을 다하여 축수합시다. 나, 조소앙은 여러분께 맹세합니다. 우리나라를 독립국으로 하오리다. 우리 동포로 하여금 자유민이 되게 하오리다. 불우한 동포는 여러분, 친구, 부형, 이들은 독립국과 자유민을 만들기 위하여 악독한 왜놈의 감옥에서 단두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원혼과 충혼을 위하여 나는 여러분 선열의 아내와 어버이와 언니와 아우에게 위로하며 사죄합니다. 이렇게 환국할 줄을 몰랐소. 그러나 다시 우리 산천초목, 금수어절에까지 고하고 맹세하고 싶습니다. 우리 민주독립을 성공하리다. 아이마다 대학을 졸업하게 하오리다. 어른마다 투표하여 정치성 권리를 갖게 하오리다. 사람마다 우유 한 병씩 먹고 집 한 채씩 가지고 살게 하오리다. 우리 조국을 광복하오리다.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되면 나의 몸을 불에 태워 죽여주시오. 대한독립만세! 임시정부만세!”

권소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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