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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플랜 75’

‘플랜 75’. 동창 채팅방에서 읽은 일본 영화제목이다.
 
최근 일본에서 개봉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에서 신인상에 해당하는 ‘카메라 도르 특별 언급상’을 수상했다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일본의 미래를 위해 고령의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장하는 이야기가 골자다. 즉, 75세 이상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국가에 죽음을 ‘신청’하면 ‘플랜 75’ 법에 의해 죽음을 허용해주는 제도가 도입되는 것이다.  
 
2025년이 되면 일본 인구 5명중 1명이 ‘후기 고령자’가 되고 노인을 위한 의료비, 사회보장 비용 폭증과 노동력 부족으로 국가 경제가 흔들리고 노인으로 가득찬 일본은 활기를 잃은 국가로 낙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플랜 75’는 이러한 일본의 사회문제 해결책으로 도입된다. 담당 공무원들이 공원으로 노인들을 찾아 ‘플랜 75’를 권유하러 다니고 가슴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콜센터까지 등장한다. 나아가 정부는 ‘플랜 75’를 선택한 이들에게 10만엔을 주어 마지막 온천여행을 즐기라는 여행상품까지 언급한다.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뉴스 멘트가 더욱 섬뜩하다, “정부는 ‘플랜 75’의 성공여부에 따라 ‘플랜 65’도 검토하고 있습니다”라는. 영화는 “당신은 살겠습니까?”라고 관객에게 물으며 끝을 맺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플랜 75’가 실렸던 그 채팅방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오는 온갖 ‘건강식 및 100세 살기운동’에 관한 ‘퍼온 글’들이다. 이웃나라에선 노인들이 너무 오래 살아서 이제는 그만 죽어 달라고 법까지 제정한다는 내용의 영화를 만드는 판인데 75세를 넘긴 내 동창들은 만병통치 ‘퍼온 글’들을 지치지도 않고 퍼 올린다.
 
하루 들깻잎 10장이면 치매방지, 하루에 양파와 고구마 반개면 회춘, 스트레스엔 바나나,  구역질엔 생강, 위궤양엔 양배추, 혈압을 낮추는덴 건포도, 곰팡이 감염 억제엔 마늘 등등 리스트가 끝도 없다. 노인들이 이 건강식들을 다 챙겨 먹고 열심히 100세 살기 운동을 해서 모두 100살까지 산다고 상상해 보자. 끔찍한 그림이다.
 
불현듯 내가 처음 미국에 와서 영어를 배우러 다녔던 학원에서 만난 디자이너 마키코 생각이 난다. 그녀는 같은 아시안이었던 나를 동생처럼 챙겨주었다. 내가 오빠의 졸업연주회에 입고 갈 옷 걱정을 하자 마키코는 내 초록색 한복 치마로 놀랍도록 우아한 드레스를 만들어 주었었다. 그 후 마키코는 일본으로 돌아갔고 헤아려보니 그녀도 이 ‘플랜 75’에 족한 나이가 되었다.
 
그녀는 이 ‘플랜 75’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마키코와 일본 노인들의 바늘방석 같은 삶을 생각하다가 ‘아, 난 일본인이 아니지’, 화들짝 안심하는 내 이기심에 싸아 소름이 돋는다.

김찬옥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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