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8000피트 상공, 치명적 바이러스와 싸워라
비상선언(Emergency Declaration)
한정된 공간 안에서 겁에 질린 승객들의 공포와 혼란 상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재난 드라마.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초청됐지만 ‘기생충’의 스타이자 영화제 심사위원 송강호의 존재로 인해 경쟁 부문에서 제외됐다. 한재림 감독의 ‘더 킹’ 이후 5년 만의 복귀작이다.
의문의 남성이 비행기에 탑승한 후 승객들의 의문사가 줄을 잇는다. 이미 2만8000피트 상공으로 이륙한 비행기, 어디로도 탈출할 수 없는 일대 혼란과 공포가 기내 상황을 지배한다. 재난에 맞닥뜨린 인물들이 각자의 절박한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선택의 기로에 선다.
형사팀장 인호(송강호)는 아내를 하와이행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 밀린 업무를 보기 위해 출근한다. 그리고 의문의 남성이 비행기 테러를 예고하는 동영상을 접한다. 아내가 탑승한 비행기만은 아니길 바라지만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고 만다. 아내와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바이러스에 투항하는 그의 영웅적 모습은 단연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과거의 대형사고로 비행공포증을 지닌 전직 파일럿 재혁(이병헌)은 아토피 증상을 보이는 딸의 치료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테러리스트의 수상한 행동을 일찌감치 감지한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인을 도와주는 의협심이 강한 인물이다. 영화는 이처럼 아내와 딸을 구하려는 두 남자의 절절한 가족애를 중심으로 지상과 상공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플롯으로 진행된다.
한재림 감독은 그만의 화두와 스타일로 사회적으로 주목할 만한 소재를 흥미롭고 완성도 높게 다루어 왔다. 틀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야기들에는 늘 현실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있다. 바이러스가 전체 승객으로 퍼져가는 기내 상황은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다.
비행기의 착륙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과 승객 구조에 비협조적인 청와대 위기관리 실장의 등장은 실제 우리의 현실과 맞물려 있다.
‘비상선언’은 한재림 감독이 첫 번째 시도하는 재난 영화이다. 재난에 휘말린 듯 기내 혼란의 현실감을 전하는 무중력 360도 회전 시퀀스, 추격하는 차량의 앞 유리를 통해 촬영된 장면 등은 웰메이드 스릴러로서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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