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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좋은 추억에 집중하기

모두들 어렵게 휴가를 조정해서 만든 3년 만의 가족 나들이였다. 아이들 오기 일주일 전부터 멸치 견과류 볶음, 소고기 계란 장조림, 몇 가지 피클 등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며칠 연달아 부엌에 서 있는 것이 얼마 만인가. 음식 재료를 사고 유튜브를 보면서 요리를 하고 만든 음식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으며 여행의 즐거움은 시작되었다. 가까운 빅베어 호수 근처에 캐빈을 빌려 4일간 복닥거렸다.  
 
첫날은 스테이크와 양념 닭을 구우며 여행 분위기를 돋우었고 둘째 날 아침은 건강식으로 오트밀을 끓여 갖은 견과를 넣어 먹었다. 점심은 물냉면, 후루룩 냠냠 모두 맛나게 먹을 때까지는 좋았다. 저녁 무렵부터 한사람 두 사람 두통과 구토와 설사가 시작되었다. 이상한 것은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남편과 나는 멀쩡했다. 아빠엄마는 ‘스트릿 푸드 먹고 자란 세대’라 배탈이 안 나는 거라는 애들 놀림에 한참을 웃었다.  
 
우린 계획대로 새벽 5시에 일어나 낚싯대를 챙겨 빅베어 호수로 나갔다. 우린 낚시에서 돌아오는 길에 배탈 낫게 하는 약을 사다 날랐다. 냉면? 닭고기? 고산병? 의심은 가지만 원인을 확실히 모르니 당분간 집 음식은 먹지 말자고 정한 후 사흘째 아침은 이머전시로 싸 온 컵반에 물을 부어 먹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라 몽땅 외식으로 돌리게 되었다. 고도가 높고 동네가 작아 음식점이 별로 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빅베어레이크 시티는 생각보다 넓었고 유명 프렌차이즈 식당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남편은 근처 낚시꾼들에게 귀동냥해가며 낚시 장소와 미끼 바꾸기를 몇 차례, 마지막 날 새벽에 드디어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낚싯대가 휘청하더니 송어가 연이어 걸려들었다. 올해 들어 부쩍 월척에 대한 꿈을 키우던 남편의 기쁨이라니. 월척 기념사진을 얼른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아이들은 속이 불편해 음식도 못 먹고 있는데 우리만 즐기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 여행은 아빠만 신났네요!’라는 답글이 올라온다. 웃는 이모콘과 함께 ‘그러네!’ 로 응답하니까, 다들 속도 가라앉고 기분도 좋아졌는지 낚시터로 오겠다고 한다.  
 


월척 명당자리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호수 댐 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문제는 화장실이다. 정말 이렇게 더러운 공공 화장실은 생전 처음이다. 누구든 화장실 안을 보면 빅베어 호수의 맑은 이미지가 사라지고, 잡은 송어도 못 먹을 것 같다. 이미 네 마리나 잡았고, 화장실도 급해서 모두 맥도널드로 향했다. 평소에는 별로 애용하지 않던 맥도날드였지만, 들어오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한 우리 가족, 이렇게 맛있었나 감격까지 하며 음식을 즐겼다. 좋은 일만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배탈이 나서 구경도 놀지도 제대로 못 하고, 구역질 나는 화장실로 인해 생각만 해도 불쾌하지만, 함께했던 추억으로 인해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오연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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