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업] "여자는 집에서 가정을 지켜야해"
19세기 중엽, 여성 해방운동이 시작되던 무렵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에 엘리자베스 블랙웰(Elizabeth Blackwell) 이라는 스무살 처녀가 투병 중인 이웃집 메리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영국에서 태어나 11세에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뉴욕으로 이주했다 다시 이사를 했습니다. 9명의 형제 중 셋째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메리는 엘리자베스에게 “당신은 공부하는 걸 좋아하고, 몸도 건강하니 의사가 되면 어떨까요? 제 의사는 너무 냉정하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데다 자궁 검사를 너무 아프게 하기 때문에 치료받는 것을 포기해 버렸어요”라고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펄쩍 뛰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17세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이런 끔찍한 시술 장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의 치료법은 히포크라테스 때부터의 영향으로 질병은 4가지 체내 물질의 균형이 깨짐으로써 생긴다는 가설 아래, 피뽑기, 물집 터트리기, 설사시키기 등이 사용됐습니다.그런데 시간이 지나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굳혔지만 이번엔 가족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 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스토우( Stowe) 부인마저 심한 차별대우로 고생을 할 거라며 강하게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친구 메리처럼 남자 의사에게 몸을 보이기 싫어 많은 여성이 자궁암으로 사망하는 것을 목격한 그녀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학자금 마련부터 시작했습니다.
음악 교사로 남부의 학교에 취직한 그녀는 그곳 교장이 과거 의사였음을 알았습니다. 교장의 허락으로 많은 의학 서적들을 읽으며 ,자신의 선택에 더 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3000달러( 현재로 환산하면 약 9만5000달러)가 모이자 그녀는 의과대학이 많은 필라델피아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미국 최초의 의과대학인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등 4개의 의과대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학교에서 입학을 거절당했습니다. 당시 여학생을 받아주는 대학조차 전국에 두세 곳에 불과했습니다. 그것도 여자 교사 양성이 목적이었고, 의과대학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전국의 의과대학에 입학신청서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의사 중에는 그녀의 강한 의지에 감동해 의대 준비에 필요한 해부학이나 생리학 등을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여성에게 적합한’ 간호사가 되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29개 의대에서 입학 거절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미 의과대학 수업이 시작된 10월이 훨씬 지난 어느 날 뜻밖에도 뉴욕주 서부의 작은 도시 제네바에 있는 의대로부터 입학 허가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식 허가서는 아니었습니다. 그녀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던 워링턴 박사라는 분이 간곡히 입학을 부탁하자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교수들이 학생 찬반 투표를 통해 최종 결정을 하기로 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정도 모른 채, 제네바시로 달려간 그녀는 방을 얻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자 의사를 본 적이 없던 주민들은 그녀를 불법 낙태 시술자로 오인해 아무도 방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의대생들은 찬반투표가 건너편 마을에 있는 경쟁 의과대학에서 만들어낸 장난이라 여겨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고 합니다. 나중에 강의실에 들어온 그녀를 본 순간 129명의 남학생은 충격에 빠졌다고 합니다.
방학이 되면 의대생들은 큰 병원에서 실습해야 되는데, 불행히도 그녀를 위해 추천서를 써주는 교수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빈민들을 위한 자선병원으로 가 진심으로 환자들을 돌보며 방학을 보냈습니다.
1849년 1월 23일 그녀는 드디어 수석으로 의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졸업 소식은 많은 여성 의사 지망생들에게 희망을 줬습니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간 엘리자베스는 다른 여의사들과 함께 여자 의과대학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올리비아 캠블이라는 언론인이 쓴 ‘위민 인 화이트 코츠(Women in White Coats)’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