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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인물탐구- 한 백부장

예닮장로교회 윤우식 목사

 오늘 함께 살펴볼 신약의 인물은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한 백부장’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마태복음 8장5절.
‘백부장’은 ‘헤카톤타르케스’로 수하에 50명~100명의 병사를 거느린 지휘관입니다. 현대 군대로 말한다면 중대장 정도 되는 계급입니다. 그런 백부장에게 한 하인이 중풍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백부장에게 이 하인이 어떤 하인인지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누가복음 7장2절.  
‘사랑하는 종’이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종은 둘로스로 단순한 종의 의미를 넘어서 노예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종에 대해서 ‘사랑하는 종’이라는 표현이 사용돼 있습니다. 여기에 ‘사랑하다’는 ‘엔트모스’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존경 받는, 고귀한’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인격도, 자유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종, 노예에 대해서 ‘존귀한’, ‘고귀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백부장이 그의 종, 노예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종이나, 노예가 없지만 업주나, 상사의 위치에 있으면서 직원이나, 팀원을 마치 종이나, 노예를 대하듯, 인격적으로 모욕하며, 함부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노예제도, 종이라는 제도가 있던 당시 상황에서 백부장이 그의 수하에 있는 종을 ‘존귀하다’, ‘고귀하다’라고 표현한다는 것은 아주 드문 것이며, 백부장의 뛰어난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백부장은 당시 유대인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누가복음 7장5절.  
 
    유대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여기에 ‘사랑하다’는 ‘아가파오’로 ‘사랑하다, 마음에 품다, 인격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다’의 의미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을 위해서 회당을 지었습니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의 표현으로 그들을 위해서 회당을 지어준 지도자였습니다. 밖으로뿐 아니라 자신의 노예에게도 인격적으로 대하며,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노예를 존귀하게 여기면 주인으로 위신이 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변의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그리고 지금 종이 중풍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유대인의 장로들이 그를 대신해서 예수께 간청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간청을 듣고 종의 병을 고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백부장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 때 백부장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누가복음 8장6절,7절.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하다’와 자신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감당하다’가 다른 단어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익카노스’로 ‘충분한, 넉넉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감당하다’는 ‘악시오’로 ‘고려할 만하다, 당연하게 생각하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 이유는 예수님은 성자하나님으로 이 땅에 ‘메시야’, ‘그리스도’로 오신 분이신데, 그 분이 자신의 삶에 들어오시기에 자신은 죄인이며,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예수님 앞에 나가가는 것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죄로 인해서 죽음을 당하는 의미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인인 상태를 인정함과 함께 그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야, 그리스도로 오셨으며,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담대함을 얻게 되며, 구원에 대한 예언을 정확하게 표현한 ‘믿음의 고백’입니다.예수님은 백부장의 이런 행동을 보시면서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7장9절. 백부장의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믿는 믿음의 삶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회당을 지었습니다. 또한 그의 생활에서 비록 ‘노예’, ‘종’이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겼습니다.오늘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주여, 주여’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랑하는, 다른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믿음입니까? 백부장과 같이 ‘이만한 믿음’으로 사는 이 시대의 백부장과 같은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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