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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와 투자] 인구 대역전과 물가

2000년대 세계적 저물가 현상
중국의 값싼 노동력 공급 덕분

중국 생산인구 30년내 2억 줄어
세계 인구변동이 물가와 직결

“당신은 린치 대상 후보 0순위야.” 1981년 미국 상원의원 마크 앤드루스가 당시 연방준비위원회(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에게 한 말이다. 고물가를 잡으려고 취임 때 11.5%였던 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갑작스러운 물가 상승 때문에 금리를 빅 스텝으로 인상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물가 상승은 한번 스쳐 가는 바람인가 아니면 계속 겪어야 하는 문제로 보아야 하는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5년 2월 미국 연준 의장 그린스펀은 세계 채권시장 움직임이 ‘수수께끼(conundrum)’ 같다고 했다. 경기 과열에 대응하기 위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정책 금리를 1.0%에서 4.75%까지 올렸는데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6%에서 4.8% 오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러니 주택시장 과열을 잡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현상에 그린스펀은 당혹스러웠다. 캘리포니아산 와인 코넌드럼(Conundrum)을 마시면서 고민해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퇴임 후 2007년에 펴낸 자서전에서 무려 세 장에 걸쳐 이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그가 파악한 문제의 본질은 인구였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의 값싼 노동력 공급이 원인이었다. 값싼 노동력은 값싼 물건을 만들어내고 이는 물가를 낮추게 된다. 물가가 낮아지면 정책 금리를 인상해도 장기 금리는 오르지 않는다. 개발도상국들은 1990년대에 연평균 50%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는데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자 5% 미만으로 떨어질 정도였다. 인플레이션에 극히 취약한 개발도상국까지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저물가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는 성장하는 가운데 물가는 안정된, 그야말로 대(大)안정기(Great Moderation)였다.
 
시간이 흐르면 인구구조는 변한다.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도 늙어가면서 노동 공급이 줄어든다. 임금이 올라가면서 세계에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게 된다. 또한, 세계가 늙어가면 생산을 해서 세금을 내던 사람들이 정부에게 돈을 받는 수혜자가 된다. 공급보다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 또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게 된다. 그린스펀은 만일 인플레이션을 확실하게 잡으려면 정책 금리를 두 자리 숫자까지 올려야 할지 모른다고 보았다. 2030년에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8%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한 명의 금융 학자가 인구구조 변화를 기반으로 고(高)물가 시대를 전망하고 있다. 런던정경대 석좌교수를 역임한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는 『인구 대역전(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에서 세계 인구 고령화와 중국의 노동 인구 감소로 과거와는 정반대의 양상이 펼쳐질 것으로 보았다. 2019년에 책을 쓰는 동안 저자는 코로나가 진정되고 나면 2021년에는 인플레가 5%를 넘고 10%에 육박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코로나 진정 시기를 1년 정도 빨리 본 것을 제외하면 물가는 정확히 전망한 셈이다.
 
세계의 노동공급, 즉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자. G20의 경우 과거 30년간 생산가능인구가 10억 명 증가했다. 10억 명 중 인도가 4억2000만 명, 중국이 2억 3000만 명을 차지했다. 그런데, 앞으로 30년간 G20의 생산가능인구는 2000만 명 증가에 그친다. 인도는 2억 명 증가하지만 중국은 1억9000만 명 감소한다. 중국은 지금이 생산가능인구 숫자의 정점이고 앞으로 계속 줄어든다. 인도나 아프리카의 젊은 인구가 증가하지만 이들은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하기 어려워 중국을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물가 상승에 대해 글로벌가치사슬(GVC) 약화,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충격,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가격 상승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저변의 거대한 흐름은 인구구조 변화에 있을지 모른다. 특히 중국의 인구 변화다. 중국이 세계에 값싼 노동력을 대거 공급했다가 다시 빼가는 과정에서 물가의 추가 크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2005년 연준 의장 이임사에서 “역사는 오랜 기간 낮게 평가된 위험이 가져온 여파를 친절하게 대한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의 말대로 2008년에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오랫동안 낮게 평가된 물가의 여파 역시 앞으로 우리를 괴롭힐 모양새다.

김경록 /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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