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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2035] 그를 이해하려면

대소변은 스스로 해결하지만 밥을 먹을 땐 도와줘야 함. 소리를 지르거나 도로변에 드러눕는 경우가 있음. 침을 자주 뱉음. 사람들이 절대 이해해주지 않음.
 
정용준의 소설 『선릉산책』에서 한두운을 설명하는 문장들이다. 한두운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 그는 한여름 낮에 헤드기어를 쓴 채 걸으며 오리나무·화살나무·자귀나무·전나무 등 공원에 있는 나무의 이름을 모두 맞힌다. 1인칭 화자는 얼떨결에 시간당 1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하루 동안 두운을 봐주기로 한다. 처음엔 두운이 ‘열 걸음 정도 앞서 걸었다’. 그러다 책의 중간부터 그들은 ‘나란히 걸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워낙 많이 회자되다 보니 우영우 얘기만큼은 안 쓰려고 했다. 그러다 끝내 온갖 기사에서 볼 수 있는 장애 이야기를 쓰게 된 건 대학생 때의 기억이 계속 맴돌아서다. 그중 하나는 자폐가 있는 학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내가 맡은 K는 중3 남학생이었는데 성인인 나보다 덩치가 컸다. 봉사활동 계획상 학교 교과 과정을 가르치는 일종의 과외를 해야 했지만 제대로 된 수업을 하는 일은 없었다. 수학책을 펴놓고 몇 번 가르치기를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과외교사론 아주 무능했지만, K의 어머니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다. 1주일에 한 번 학교가 끝난 오후 4시쯤부터 저녁까지 K를 만나는 날은 어머니가 저녁까지 식당일을 할 수 있는 날이었다.
 
K와의 시간을 보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는데 어떤 말에 그다음 질문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만한 답변이 돌아온 기억이 없다. 때로 무언가를 같이 먹을 때면 그는 놀랍도록 빨리, 많이 먹었다. 친해져 보겠다는 이유로 눈 맞추기를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자폐가 있는 사람 상당수가 타인과 눈을 맞추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친해지기 위해선 눈을 자주 맞춰야 한다’는 말이 수학 문제의 정답처럼 당연한 줄 알았는데 비장애인에게만 참인 명제였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떠나면서 K와의 과외가 끝나고 나서야 그를 내게 맞추려고만 했다는 걸 알았다. 만날 때마다 K는 나름의 아는 체를 했는데, 나는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숙여야만 인사인 줄 알았다.
 
장재숙 동국대 교수는 『지금 사랑을 시작하는 그대에게』에서 “한 사람만 표현하고 다른 한 사람은 참아내는 소통은 탈이 난다”고 말한다. 서로 맞춰가야 한다는 뜻이다. 맞춰가야 할 사람이 있을 뿐 우리가 일방적으로 원하는 장애인의 모습은 현실에 없다. 『선릉산책』의 마지막에 한두운과 한나절을 보낸 화자는 자문한다. ‘오늘 만난 한두운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나’. 이해의 시작으로, 그를 궁금해한다.

정진호 / 한국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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