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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

요즈음은 만나는 사람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하소연한다. 시간이 멈춘 듯 답답했던 지난 팬데믹 이후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 20대는 시간이 20km로 70대는 70km로 간다는 말에 실감한다. 하지만 시간은 인간이 편리에 의해 만들어놓은 개념이다. 하루 24시간은 언제나 똑 같고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시간은 직진만을 고집한다. 어느 누구도 시간을 역행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토록 정확한 시간의 흐름도 우리는 의식적으로 느리게 혹은 빠르게 바꿀 수가 있다. 즐겁고 신나는 일이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시간이 기어가는 것 같은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다. ‘탱탱’ 이라는 어휘를 나는 참 좋아한다. 발음 자체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하지만 그 탱탱함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심지어는 물건도 시간이 지나면 탄력을 잃게 된다. 풍선도 시간이 지나면 바람이 빠지고 지붕도 세월을 못 이겨 갈라진다. 사람 몸도 성장기가 지나면 서서히 노화를 시작한다. 외관은 눈에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체내의 장기들도 서서히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평생을 뛰고 있는 심장도 지치게 되고 다리가 마음처럼 빨리 움직여주지 않아 넘어지기도 한다.  
 
이 사이를 나는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라고 부르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거리는 길어진다.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무대를 내어주고 우리는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젊은이의 패기와 건강미, 자신감 등의 능동적 행위와 반대로 노인의 무력감은 불안과 우울을 초래한다. 난 개인적으로 백세시대를 찬미하지 않는다. 병상에 누워 120세를 채우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문제의 해결점이 보인다. 우리는 노화의 진행과정을 멈추거나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하면 불안과 우울을 동반하는 무력감과 조급증을 조율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시간에 대한 개념은 충분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능동적으로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동적인 삶은 비평을 일삼게 되고 의욕이 생기지 않지만 능동적인 삶은 창의적이고 엔돌핀이 솟구쳐 나오게 되어 있다.  
 
젊었을 때는 감정이 앞서고 무모할 수도 있지만 나이 들어서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고 자제력을 갖춘 지혜도 얻을 수 있다. 인생의 각 단계에서 오는 부정적인 특징을 재고하여 미리 준비하며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 고정적인 관점을 벗어나 젊은 시절의 용기와 호기심을 되찾아 보려는 용기도 필요하다. 심신이 쇠약해질수록 몸과 마음의 거리는 멀어진다. 젊은이들과의 적극적인 교류로 그들의 정신, 사고방식, 그리고 열정을 흡수하고 다가가 진정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젊게 사는 하나의 지혜가 된다. 요즘 젊은이들도 기성세대와 교류를 통해 인생의 멘토로서 당신의 시각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역사는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면서 이루어지는 기록이다. 과거는 우리의 역사이고 기록일 뿐 아니라 미래의 초석이다. 모두 몸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자세로 생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불평 대신 폭 넓은 대화로 마음의 유연성을 유지하면 창의성은 계속 개발되리라 믿는다. 노화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을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삶으로 전환하는 것도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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