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존영(尊影)
며칠간 ‘존영(尊影)’이라는 말이 뉴스에 오르내렸다. 지난 11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존영을 중앙당과 시·도당 사무실에 걸자”는 논의가 오간 게 계기다. 민주화 이후 태어난 한글 세대에게는 듣기조차 생소한 단어다. 존귀한(尊) 모습(影)이라는 의미로, 사전적 정의는 ‘남의 사진이나 화상 따위를 높여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이다. 비슷한 말로 존조(尊照)가 있다.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단어가 21세기 여당 회의에서 거론된 사연은 이렇다.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한기호 사무총장이 최고위에 당무를 보고하면서 “지역 당원협의회와 시·도당 등에서 오래된 전직 대통령 존영 디자인 교체를 요구한다”는 민원을 전했다. 그러자 한쪽에서 “전직 대통령 사진을 거는데, 현직 대통령 사진은 어떻게 되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안 그래도 요청한 지역들에 윤 대통령 존영을 발송했다” “시·도당에서 거는데 중앙당에는 왜 안 거느냐는 말도 있다”는 식으로 논의가 흘러갔다.
국민의힘은 자유한국당 시절 홍준표 당시 대표 결정으로 이승만·박정희·김영삼 3인의 전직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었다. 더불어민주당 당사에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이 있다. 이들은 모두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이다. 그래서 “영정도 아니고 왜 살아있는 현직 대통령 사진을 회의실에 거나. 기괴하다”라는 젊은 당직자와 보좌진 반응은 일리가 있다.
존영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풍기듯, 사진에 비현실적 권위를 부여해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발상 자체가 거부감을 준다. 스마트폰과 TV만 켜면 언제 어디서든 지도자 얼굴을 고화질로 볼 수 있는 시대에 사진 우상화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다. 12일 홍콩 매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가을 당 총서기 3연임과 함께 ‘표준 초상화’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에서는 6년 전 홍수 때 교사·학생 등 13명이 김일성·김정일 부자 초상화를 구하러 급류에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자유자재로 편집한 짤(사진)과 움짤(동영상)이 판치는 지금의 한국 정치에 존영 거론은 “시대착오적 발상”(조경태 의원)이 맞다. 역대 대통령 중 취임 초 최저 지지율을 기록 중인 윤 대통령이 때아닌 ‘사진 정치’ 논란을 겪는 것도 민망하다.
심새롬 /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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