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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귓속에 넣고 다니는 아기

남의 일이려니 했던 것이 나의 일이 되었다. 그동안 노인들이 귓속 또는 귀걸이형 보청기를 끼고 다니는 것을 무심코 보았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나도 목사님의 설교가 잘 들리지 않는다. 손을 소라처럼 오므려서 귀 뒤에 대니까 들리는 것이 나아졌다. 텔레비전 소리를 왜 그렇게 크게 틀어놓느냐고 아이들이 야단이다.
 
난청이 의심되었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청각 테스트를 받았다. 진단 결과는 난청이 시작되었으며 오른쪽이 더 심하다는 것이었다. 보청기 착용을 권해 보청기를 구매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메디케어로는 보청기 구매에 대한 혜택이 없다고 한다. 메디케어는 노후를 위한 의료 보험인데 ‘나 몰라라’ 하는 격이다.  
 
누구나 잘 아는 도매 회사에서 귓속 형 모형을 떠서 보청기를 맞췄다. 귀걸이형이 가격도 좀 싸고 더 잘 들리는 편이지만, 귓속 형을 택했다. 노인임을 숨기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보청기는 녹두 알 크기의 작은 배터리를 사용한다. 배터리의 사용 기간은 쓰는 빈도에 따라서 짧게는 3일부터 길게는 1주일이라고 한다. 워낙 작아 다루기 어려워 핀셋을 사용해서 집는다. 귀에 넣으면 젖 달라는 아기처럼 빽빽 소리를 낸다. 이 보청기는 귓속에 넣고 다니는 양자다.
 


알곡을 거두려면 잡초도 잡히게 마련이다. 목사님의 설교 소리가 잘 들리니까 다른 잡음도 들린다. 특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차고 문 열고 닫히는 소리, 화장실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변기의 물 내려가는 소리,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등. 듣고 싶은 소리만 들을 수 있는 보청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보청기를 착용하면서 나에게도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늙음을 거부했다.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 말대로 노인이 오는 것을 막대기로 막았더니 그 노인은 벌써 지름길로 와 있었다. 늙음을 인정하는 것은 지혜의 근본이다. 노인의 욕심(노욕)이나, 노인의 추태(노추)를 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나의 청력 기준은 목사님의 설교를 잘 듣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만 보청기를 사용한다. 아직 집안 식구와는 보청기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다. 가끔 아내에게 두, 세 번 묻는 경우가 있지만. 청력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어느 종교 철학자가 말했다. ‘태산준령이 소리를 내지 않으니까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숲속의 나무가 소리를 내지 않으니까 손뼉을 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산이 부르는 노래와 숲속의 나무가 손뼉을 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나는 이제 양자와도 같은 보청기를 끼었다. 산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나무가 손뼉 치는 소리를 듣고 싶다. 

윤재현 / 전 연방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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