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삶] 해피엔딩을 위한 다짐
가파른 비탈만이/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산다는 일은/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오히려 산 아래에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그 하루하루/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나희덕 시인의 ‘속리산에서’ 부분
높이에 대한 선망은 언제쯤이나 사라질까. 이쯤에서 다 내려놓았다 싶은데도 가끔씩 고개를 삐죽 내미는 욕망의 잔뿌리가 있다. 그것도 없으면 살아 있는 게 아니지 싶어 마음을 다독여 보기도 하고 후회를 곁들여 쓰다듬어 보기도 한다.
가파르게 앞을 막고 서 있던 것은 사실 생활이라는 절벽이었다. 오르기에 벅차고 오르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던 밥을 끓이는 일, 생의 최전방이던 먹고 사는 문제는 늘 제일 큰 산이었다.
안전지대는 없었다. 무엇도 만만치만은 않았다. 벼랑을 오르는 일, 더욱이 미국이라는 풍요로운 땅에서 겪어야 했던 마음의 빈곤은 여러 해를 살고 있어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고 있다. 욕망은 대개 탈선을 일삼았다. 한때 쟁취했었더라도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곤 한다.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동경했던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그 동경으로 택한 미국은 인생의 기대치를 높여주긴 했지만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타국의 편견을 견딜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잘 살아내는 일만이 최선책이어서 입을 앙다물고 살아왔다. 나뿐이겠는가 우리는 다 그랬다. 이제 뭉친 근육을 풀고 다리를 뻗으면 좋으련만 긴장은 여전하다.
오랜만에 친정에 왔다. 어머니의 집은 물 주름이 펴진 호수 같은 것일까. 마냥 느긋해도 될 것 같다. 뿌리를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타향의 공기와 뭐가 다를까 싶지만 청국장 끓이는 냄새도 구수하다.
친정이란 말을 새겨본다. 책임과 의무에서 무장해제 되어도 될 것 같은, 내 존재가 존재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될 수 있을 것 같은, 내가 나답게, 내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아 새삼 친정이란 말이 좋다.
마루에 대자리를 깔고 누워 노모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의 일이란 엇박을 놓기가 일쑤다. 어머니가 살아온 세월이 그랬겠고 나의 세월도 다르지 않아 세월의 저편은 늘 짠하다. 그 세월을 소환해 내는 일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연민이기도 하다.
고단한 시대를 견뎌온 어머니와 비교적 편한 세상을 살아온 나, 그러나 살면서 체감해야 했던 빛과 그림자는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삶은 때로 무례하기도 해서 우리에게 갖가지 상처를 남기곤 하지 않던가.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불편한 몸으로도 자식들의 안전을 위해 찬송하고 기도하는 구순 넘기신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은 감사이지만 슬픔이다. 자식은 환갑이 되어도 어미에게는 어린애라며 먹을 것을 챙기는 어머니. 냉동실에 준비해둔 음식들을 꺼내 해동시키는 시간은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기다림의 후일담 같은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은 어머니와 나의 이야기 마지막 챕터가 될 것 같다. 밥을 안치고 갈치를 굽는 사소함도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 밑줄을 그어야 한다. 식어가는 국화차를 앞에 놓고 나누는 우리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을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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