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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향가를 다시 읽다

우리나라는 역사가 깊은 만큼 주옥 같은 문학작품들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시대 한자의 음과 뜻을 빌린 향찰로 표기한 향가가 14편 전하고 있다. 먼 옛날에 쓰여진 향가들이 오늘까지 깊은 공감을 갖게 하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어쩐지 의아한 느낌을 갖게 하는 글도 있다.  
 
먼저 경덕왕 때 월명사가 지은 ‘제망매가’는 일찍 죽은 누이를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에 비유하고 있다. ‘생사로는/ 여기 있으매 두렵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는구나.’ 130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죽은 누이에 대한 슬픔이 극진하게 전달 되고 있다. 또한 경덕왕 때, 충담사가 화랑 기파랑(耆婆郞)을 추모하여 지은 ‘찬기파랑가’도  기파랑의 고결한 마음을 냇물에 비친 달의 모습과 서리에 굽히지 않는 잣나무에 빗대어 찬양하는데 뛰어난 수사법 사용으로 문학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헌화가’는 읽을수록 다르게 느껴진다. 그 전문은 ‘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이다. 이는 신라 성덕왕 때에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해 가는 길에 일행이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다. 그의 아내 수로부인이 천길 바위 봉우리 위에 핀 철쭉꽃을 갖고 싶다고 말했으나 주위에 있던 시종자들은 위험하다 하여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 때 암소를 몰고 지나가던 노인이 이 말을 듣고 꽃을 꺾어 바치며 불렀다는 노래이다.
 
그런데 이 설화를 좀 더 확장해서 구체화해 본다면, 이 노인이 꽃을 꺾으러 바위를 오르는 모습은 주위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을 것이다. 이때 들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견우노옹의 뒤에는 부인이 따라가고 있었다. 앞서 가던 영감이 소를 놓고 갑자기 천길 벼랑에 붙어서 기어올라가고 있었다면 부인은 어떤 눈길로 바라보았을까?  
 


이 시의 중심 사상은 대체적으로 ‘신라인의 낭만적 사랑과 미의식 또는 수로부인의 아름다움 예찬’으로 정리되었는데 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생업에 필수적인 소를 놓아버리고 왜 낭떠러지에 기를 쓰고 올라갔는가? 그 자발적인 행동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당시 고관대작 부인이라는 사회적 권력을 향한 맹목적인 복종의 관념 때문인가? 아니면 천둥 같은 남편 순정공이 옆에 있건 말건 아름다운 여인에게 꽃을 바치고 싶은 순수한 사랑 때문인가? 현실적인 주변 관계를 저버린 이런 돌발적인 행동이 지고지순함이라는 이유 때문에 존중받아야만 하는가? 처음 본 절세미인을 위해 위험천만의 결정을 감행하는 용기도 낭만으로 미화되어야 하는가?  
 
문학을 통해 그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저렇듯 무모하게 행동하는 남편에게 할머니는 어떠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어쨌든 이런 소중한 작품을 남긴 작가에게 찬사를 보내며, 고려 충렬왕 때 ‘삼국유사’를 쓴 일연 선사에게 감사해 마지 않는다. 삼국의 야사와 불교적인 내용과 더불어 구전되어 사라지기 쉬운 고전문학을 기록으로 남겨 놓은 업적이 지대하다. 가끔씩 고전 문학을 다시 꺼내서 천편일률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권정순 / 전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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