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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죽음은 증오범죄, 사법당국 답하라”

지난 5월 피살된 고 이달근씨…딸 다미씨의 분노
체포된 용의자 사건 며칠전
다른 아시안 찌르려다 체포
LA 카운티 검찰은 불기소
풀려난 뒤에 아버지 살해

캐시 이씨가 본지 기자와 만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캐시 이씨가 본지 기자와 만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지난 5월 사우스LA에서 괴한의 흉기에 찔려 무참히 살해된 한인 업주 이달근(70)씨〈본지 5월 12일자 미주 4면〉의 유가족이 그의 죽음에 대해 사법 당국에 명확한 답변을 촉구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반아시안증오범죄로 보고있다고 밝힌 이씨의 딸 이다미(40·영어명 캐시)씨는 29일 본지에 “LA경찰국(LAPD)과 LA카운티 개스콘 검사장 사무실에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범위 내에서 피고인을 충분히 조사하고 ‘증오범죄’를 포함 적절한 혐의로 기소하는 것을 촉구하기 위해 민권 옹호 단체 ‘아시안 아메리칸 정의 진흥 협회(AAAJ)’와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기사 3면〉
 
지난 2013년 딸 캐시 이 씨가 결혼식에서 아버지 고 이달근 씨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제공 Corinne Graves]

지난 2013년 딸 캐시 이 씨가 결혼식에서 아버지 고 이달근 씨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제공 Corinne Graves]

지난달 5일 이씨가 운영하는 코인론드리 밖의 야외 주차장에서 자신의 벤에 앉아있던 이씨를 괴한이 흉기로 목을 찌르고 달아났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이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다미씨는 LA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처음엔 잔인하고 무작위적인 범행에 그저 기괴한 악몽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곧이어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사건 발생 불과 며칠 전에 비슷한 수법으로 다른 아시안을 해치려다 체포됐던 것.  
 
하지만 용의자는 구금되지 않고 풀려났고 다미씨의 아버지는 그에게 살해됐다.  
 
이 모든 사실이 드러난 것은 변호사인 다미씨가 기소장 사본을 확인하면서다.  
 
살해 및 살상 무기에 의한 폭행 중범 혐의로 기소된 흑인 남성 킨테 우즈(25)는 이씨를 살해하기 6일 전인 4월 30일, USC 캠퍼스 뜰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국계 남학생 제이미(20)를 뒤에서 덮쳐 흉기로 목을 찌르려다 피해자의 저항에 실패하고 도주했다. 당시 범인 손에는 날카로운 금속 헤어핀이 쥐어져 있었다.  
 
당시 LA경찰국(LAPD) 수사관은 체포된 우즈를 살상 무기에 의한 폭행 중범으로 LA카운티 조지 개스콘 검사장 사무실에 송치했지만, 불기소 됐다.
 
“헤어핀이 치명적인 무기로 사용됐거나 의도된 것임을 입증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검찰 측의 설명이었다.  
 
그렇게 검찰은 5월 4일 경범죄 심의를 위해 LA시 검찰로 사건을 넘겼고, 다음 날 이씨는 살해됐다.  
 
우즈의 폭행 중범 혐의가 살인 혐의와 함께 묶여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아버지 사건에 관한 혐의라 생각했다”며 “폭행 중범 혐의에 대해 검사가 다른 사건의 텍스트를 잘못 붙였다고 생각했다”고 다미씨는 말했다.  
 
이는 LAPD 수사관이 이씨의 살해 사건을 조사하면서 사건의 유사성을 고려해 우즈의 앞선 혐의를 중범죄로 기소해달라고 재요청했고, 검찰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생긴 일이었다.  
 
사실을 알게 된 다미씨는 분노했다. 경찰과 검사 모두 다미씨와 가족에게 앞선 폭행 혐의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미씨는 “앞의 사건이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어야 했다”며 “피해자 제이미가 무능력한 중국 유학생이 아니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범인을 경범죄로 기소한 것은 그가 또 다른 아시아인 피해자(아버지)를 찾게 하였다”며 맹비난했다.
 
다미씨는 조지 플로이드 죽음 이후 흑인과 히스패닉계를 차별했던 사법 체계의 부당함에 맞서 사법 개혁을 지지해왔지만 이와 상관없이 개스콘의 정책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그녀는 지난 30년간 쉬지 못하고 밤낮없이 일해온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허망함을 토로했다.  
 
다미씨에 따르면 아버지 이씨는 한국에서 전기기술자로 일하다가 1991년 가족들과 LA로 이민 왔다. 기업들의 문을 두드렸지만, 언어 장벽으로 길이 막힌 이씨는 코인론드리를 열고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새벽녘부터 늦은 밤까지 일만 했던 아버지가 쉬기 시작한 건 그의 나이 70세 때”라며 “그제야 아버지는 골프를 치거나 증손자들과 시간을 보낼 계획을 세우는 등 여유시간을 가졌다”고 전했다. 
 
 

장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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