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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책거리 그림

좋아하는 것은 그 그림만 보아도 기분이 좋다. 연말 때 받아보는 달력 중 유명한 골프장 사진으로 만든 것을 받은 적이 있다. 골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심심한 골프장 잔디밭을 일 년 내내 보아야 하나 하고 심드렁해 하는 나를 보고 골프를 많이 좋아하는 친구가 말한다. 저렇게 멋있고 아름다운 골프장 사진만 보아도 가슴이 뛰고 그곳에 가 있는 듯 한 시원한 느낌이 우리를 사로잡는다네. 산에 오르는걸 밥 먹기보다 좋아하는 사람은 알프스에 잘 생긴 마터호른의 근사한 사진만 보고도 눈빛이 반짝인다. 가본 사람은 그때의 가슴 벅찼던 만남을 되새기며, 안 가본 사람은 이 멋진 풍경 속에 어느 날 꼭 들어서 보겠다고 다짐하며 홀린 듯 설산의 자태를 감상한다.
 
 한국의 민화를 그림의 소재에 따라 나누면 선비의 방안에 운치 있게놓인 소품들을 그린 그림과 그것들과 함께 서책을 잘 쌓아 놓은 모습을 그린 ‘책거리 그림’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책장을 바라보며 읽어낸 책들을 감상한다. 그 책들의 표지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속에 활자를 읽어가며 느꼈던 감동을 되새기며 뿌듯해한다. 혹 독후감을 기록해 놓았다면 기록된 그 소감만 보아도 기분이 흐뭇해진다. 책의 사진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정성 들여 만들어진 책들의 모양과 색깔과 꾸밈과 제목의 아름다운 글씨와 자신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귀중한 재산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지금도 학술적 의견을 전하는 발표자가 여러 가지 책이 가득한 서가를 배경 삼는 것이 책거리 그림을 즐기던 마음과 닿아있는 듯하다.  
 
 읽고 난 책의 정리를 읽은 순서대로 하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 내용별로 정리하면 자신의 내면구조를 읽어낼 수 있지만 읽은 순서대로 하면 내면의 흐름과 역사를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어떻게 성장하고 색깔이 바뀌어 왔는가 돌아보며 보람 있고 아쉽고 그땐 그랬었지 하는 자라나는 그림을 만들어 가게 될 것 같다. 책장 정리를 위해 내려놓은 책들을 바라본다. 펼쳐내어 읽고 냄새를 맡고 책이 말하는 세계를 다녀보고 감동하고 깨닫고 새길을 만나고 그곳을 돌아다니며 좋아하던 시간을 떠올린다. 이제는 헤어져야 하는 친구로 여겼는데 다시 생각하니 나의 세계를 살찌우고 나를 위로하고 나를 즐겁게 하고 나의 시간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이제는 한 쪽에 물러나 앉은 다소곳한 존재다. 살살 등 두드려 싶은 마음이 든다. 가끔 삶에 쌓아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하여 가난해지는 마음이었는데 보이지 않게 쌓여있는 내 속에 ‘그것’으로 제법 풍성해져 있는 내 속을 깨닫고 감사하게 된다. 책들의 말씀 ‘그것’으로 인하여 가난함이 사라진다.
 
선비들의 시간을 살던 사람들이 책거리 그림을 보던 심정을 같이 느껴보려 한다. 풍광 좋은 산수화 그림이나 생활을 그리던 풍속화나 선비의 기개를 들어내던 사군자 그림 등 볼 것이 많았으나 굳이 서가에 가지런한 책들의 그림을 바라보고 흐뭇해 하던 선조들의 책사랑 마음이 그리워진다. 나란히 자리 잡은 서책이 주는 특별한 만족이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한 응원가가 되어 살아가는 힘을 주지 않았을까. 잘 묶어 책으로 태어난 언어들이 책이라는 형태를 넘어 책을 읽으므로 만들어가던 삶의 그림이 되어 책거리 그림 위에서 날갯짓하며 날고 있다. 그렇게 책거리 그림의 의미가 바쁘게만 사는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온다. 정말 우리가 찾아다니고 지켜야 할 것을 ‘책거리’에서 끄집어내어 본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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