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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백 권만 있는 서점

저는 어려서부터 책이 좋았습니다.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았습니다. 말이 좋았고, 글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언어를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나누는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직업이지만 그다지 직업이라는 생각은 안 하고 삽니다. 그냥 삶이지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물론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쓰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신경을 쓰지 말아야지 해도 신경이 쓰이고 괜히 초조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날카로움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겁니다. 끝이 꼭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끝은 또 다른 시작점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할 필요도 있습니다.  
 
 새로 시작한다고 해서 그 전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여전히 책이 가깝고, 글이 가까운 삶일 겁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람도 가까운 삶이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 편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어깨를 빌려줄 기대고 싶은 언덕이기 바랍니다. 외로움이라든가, 괴로움을 나누고 지금보다 조금은 더 밝은 모습으로 살 수 있기 바랍니다.  
 
 제가 새로 하였으면 하는 일은 서점입니다. 돈보다는 책, 글, 이야기가 주가 되는 곳입니다. 말이 서점이지 사실은 복합공간이기도 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책을 팔기는 하지만,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는 공간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서점은 저의 꿈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서로 어떤 꿈을 꾸는지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면 꿈이 제대로 이루어질 듯합니다. 어떤 서점이 좋을까요?
 


 제가 꿈꾸는 서점의 주인은 마치 우수한 사서처럼 책의 안내자이고 토론자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서점에 책이 많으면 안 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인이 안 읽은 책이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물론 읽었는데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던 책도 갖출 필요는 없겠지요. 서점이 도서관이 아니니까 주인이 권하는 책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꿈꾸는 서점에는 주인이 귀한 마음으로 고른 책, 100권 정도만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모두 주인이 좋아하는 책이고, 권하고픈 책이고, 언제나 손님과 이야기가 가능한 책입니다. 이왕이면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책이면 좋겠네요. 손님은 서점에 와서 책을 보고, 본인이 읽지 않은 책을 사면 됩니다. 선택이 쉽습니다. 주인의 안목을 믿기에 큰 고민 없이 책을 고릅니다. 내용도 물어보고 이야기도 나눕니다.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네요.
 
 이야기를 위해서라면 간단한 차도 팔면 좋겠네요. 한적한 저녁 시간을 위해서 생맥주 한 잔 정도도 좋아 보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심야식당 같은 분위기의 책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손님이 고른 책이 그날의 이야깃거리입니다. 100권의 책이 늘 똑같을 필요는 없겠죠. 새로 읽은 책 중에 좋은 책이 있으면 추가하면 되니까요. 조금 오래되었거나 덜 읽히는 책은 바꿀 수도 있습니다. 바처럼 생긴 책방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책이 치유가 되는 서점 꼭 내보고 싶습니다. 가끔은 저자와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 좋겠네요. 음악 치유, 미술 치유, 독서 치유, 글쓰기 치유, 언어 치유의 공간도 되면 좋겠습니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더 살고 싶어지는 책방을 꿈꿉니다. 아직 앞으로 시간이 남은 꿈이기는 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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