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막장의 추억
나는 막장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광부 옷을 입고 머리에는 헬멧을 썼다. 무릎 장화를 신었고 이마에는 앞쪽으로 비치는 전등을 달았다. 볼리비아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 포토시라는 도시에 있는 세로리코라는 은광에 들어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은이 매장돼 있는 곳이다. 광산 중에서 가장 많은 광부가 죽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1543년에 시작해 2014년까지 약 80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이런 위험한 은광에 나는 왜 들어간 것일까.
이 은광의 막장은 여러 군데가 있었다. 좁은 갱도를 따라서 철길이 두 가닥으로 나있고 그 위로 조그만 궤짝 같은 수레를 타고 이동했다.
갱도를 파다가 더 이상 은이 나오지 않는 곳은 막혀 있었고 그 막장에는 광부의 안전을 비는 수호신이 만들어져 있었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수호신은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관광 안내원은 갖고 간 데킬라 술을 한 잔 따라서 수호신의 입에 주었고 담배에도 새로 불을 붙여 주었다.
은광 구경을 하고 나온 우리 관광객 6명은 서로를 보고 웃었다. 얼굴과 옷이 먼지와 은가루로 뒤범벅이었다. 안내원은 막장도 새로 조사해서 은이 나올 수 있다고 판단되면 다시 판다고 설명했다.
내가 처음 힘든 일을 해 본 것은 14세 때 가출해서다. 부산에 가서 이수즈 트럭회사의 조수로 취직했다. 그때는 긴 쇠막대기를 돌려서 트럭의 시동을 거는 때였다. 어린 나는 체구가 작고 힘이 없어서 막대기를 돌린다기 보다는 매달리는 형편이었다.
84세가 된 나는 지금까지 해본 일들을 세어 본다. 밤 화장실 청소, 식당 그릇 닦기, 수퍼마켓 바닥 청소, 남의 옷 빨아주기, 가게 유리창 닦기, 신발가게 점원, 중국집 튀김 일 등 많다. 그때 기분이 어떠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리 나쁘지 만은 않았던 것 같다.
서효원·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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