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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달마도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한 사내가 이국 땅 낯선 산 바위 앞에 앉아 있다. ‘바위를 등지고’가 아니고 ‘바위를 바라보며.’ 햇빛, 달빛, 먹구름, 흰구름, 봄 바람, 여름 폭풍, 소나기, 눈보라… 대자연의 모든 현상들이 그냥 그를 스쳐 지나간다. 가끔씩 사람의 시선을 느끼지만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9년 세월을 보낸다.  
 
달마 대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서기 500년 무렵 중국에 왔다. 남인도 팔라바 왕국의 셋째 왕자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타밀 나두의 칸치 출신. 인도양을 건너 말라카 해협을 지나 오늘날의 중국 광조우에 상륙한다.  
 
달마는 불교에 출가한 스님, 올바른 불법을 중국에 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떠나온 길이다. 당시 불교는 이미 중국에 번성하고 있었다. 중국은 유목민 중심의 북조와 그들에게 밀려 내려온 한족 중심의 남조로 나뉘어져 여러 왕조가 각축을 벌일 때였다. 달마가 도착한 광조우는 남조 양나라의 국제 무역항.
 
이때 양나라의 황제 무제는 ‘보살 황제’로 불릴 만큼 독실한 불자였다. 불사를 크게 일으켜 많은 절을 지었고, 자신이 세운 동태사의 노비가 되어, 나라로 하여금 비싼 시주를 하고 황제를 다시 찾아오게 하는 식으로 재물 보시를 많이 했다. 서기 527년 달마는 양무제를 만난다. 황제는 자신의 불사 공덕의 가치를 묻는다. 달마는 “무(無), 아무것도 없다”라고 대답한다.  
 
머쓱해진 양무제가 달마 대사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법의 근본이 되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의 대답 “만법은 텅 빈 것.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황제의 마지막 질문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너는 누구냐?” 달마가 답한다. “불식(不識), 모르겠소.”
 
중국 최초의 선문답이다. 달마는 그 길로 갈대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가서, 낙양 근처의 숭산에 자리를 잡고 면벽 9년 수행을 했다는 이야기. 달마는 그렇게 중국 선종의 일대조가 된다. 육대조 혜능이 선풍을 크게 일으키고 그의 법맥을 이은 역대 조사들이 중국, 한국, 일본, 월남에 새로운 불교 선의 바람을 크게 일으킨다.  
 
달마는 또한 소림사 권법을 창시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오뚝이 다루마 인형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녹차의 원조라는 전설도 있다. 세상에 제일 무거운 것이 졸릴 때 눈꺼풀. 달마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눈꺼풀을 뜯어 던지니 그 자리에서 차 나무가 자랐다고.  
 
향수는 떠나온 그 곳, 지나간 그 일에 대한 집착이다. 또한 지금 여기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다. 출가를 하고 선의 최고 경지에 오른 달마 대사도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달마는 생전에 추앙도 받았지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가 다른 스님에 의해 독살 당했다는 설도 있다. 그는 그렇게 중국에서 죽어 묻혔다. 그런데 그 달마가 지팡이 끝에 짚신 한 짝을 달아매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로 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달마의 묘를 파보니 달마의 몸은 없고 짚신 한 짝만 덜렁 남아 있더란다.  
 
“내가 중국에 남겨 놓은 역사적 업적은 딱 짚신 한 짝.” 달마다운 무언의 설법. 조사는 향수마저 버려야 된다는 생각도 버린 대 자유인 달마의 귀향.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이다.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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