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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무한복제 시대의 고유성

녹슨 칼이나 낡은 시계, 오래된 모터사이클에 이르기까지 한눈에도 고물에 가까운 물건들을 수리해서 새것처럼 만들어 내는 동영상을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금손을 가진 손재주가 좋은 장인의 솜씨와 벽에 못 하나 제대로 박는 것도 어려운 나를 비교하며, 혹여 재난이라도 일어나면 독자적 생존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불안감까지 듭니다.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것은 도구의 인간이라 불리는 우리 종의 유용한 형질임에 틀림없습니다.
 
손재주로 시작한 인류의 문명은 산업혁명 이후 컨베이어 벨트를 거쳐 로보틱스와 인공지능의 결합으로 공진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지능화와 자동화라는 새로운 생산수단으로 인간의 노동을 제거한 무한복제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어릴 적 방문했던 박물관의 관람은 선사시대 유물에서 시작했습니다. 돌을 떼어내어 만든 칼과 도끼의 거친 표면이 섬세하게 갈아 매끈해지기까지도 긴 시간이 걸렸다 했습니다. 이제는 밀리미터 이하의 단위까지 조절되고 제어되는 사회로 진입하며 품질이 상향 평준화돼 제품 간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집니다.  
 
자연스레 소비자들은 품질을 넘어 다른 차원의 욕망을 갖게 됩니다. 물질적 필요에 의한 욕구를 넘어 상징으로서의 소비로 확장되는 것이죠.
 
가방을 예로 들어 볼까요? 튼튼하고 물건을 잘 담을 수 있는 본연적 기능은 이제 당연합니다. 여기에 심미성을 갖는 디자인과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는 색상이 요구됩니다. 제로 플라스틱이나 업사이클링과 같이 환경을 고려한 소재의 선택은 필수적이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 환경의 제공을 원칙으로 세우고 적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생산자에 대한 배려가 고려됩니다.
 
여기에 머무른다면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시절 동안 대중에게 선망받는 이들로부터 유래된 이야기들이 촘촘히 자리 잡습니다. 할리우드 스타에서 왕비가 된 배우와의 일화로 유명해진 가방은 그 이름 자체가 전설이 되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물건이 쏟아지는 낭패를 경험한 가수에게 주머니가 있는 실용적인 가방을 디자인해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전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일화가 모여 쌓인 역사는 오랫동안 검증된 신뢰로 자리 잡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나와 가까운 이들과 공유한 매우 사적인 소중한 일상 속, 그 가방이 함께 한 기억으로부터 내 삶의 고유한 의미를 추억합니다. 겨울이 채 가시기 전, 봄의 햇볕이 아직은 아쉬운 3월의 입학식에 운동장에 모인 여덟 살 꼬마를 기대와 걱정으로 바라보던 어머니의 손에 들린 가방 속에는 혹여 흐르는 콧물을 닦아주려는 손수건이 들어있었습니다.
 
이렇듯 제품의 소재, 형태, 일화, 역사, 대상, 관계, 일상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낱낱의 고유함이 켜켜이 쌓이며 브랜드는 극단의 고유함을 만들어 나갑니다. 무한복제의 시대, 이제 우리는 더 깊은 고유함을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정말 소중하기 때문이기도, 기능적 필요는 누구나 만족할 만큼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고유함에 나와 우리가 관여하며 다시 새로운 고유함을 만들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유한 내가, 고유한 이 행성 위에서, 고유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지는 나의 일생은 그 어떤 삶과도 중첩되지 않습니다. 그 작디작은 흔적이 덧없이 스러져 잊히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각자는 더욱 큰 고유함을 꿈꾸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인류라는 생명체가 쉼 없이 우리 종의 고유함을 만드는 일에 본능처럼 매진하기에, 그 일원인 나 또한 그 거대한 역사에 자연스레 참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무한한 복제가 가능해질수록 우리는 더 정교하고 복잡한 다차원의 고유함을 끊임없이 만들고 발신해 나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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