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포럼] 다카 10주년, ‘드리머’의 꿈은 계속된다
2012년 6월 15일. 백악관 로즈 가든. 오바마는 행정명령 한 가지를 전격 발표했다. 서류미비 청소년 추방 유예다. 다카(DACA, 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로 명명된 이민 행정 정책이다. 올해 시행 10주년이 된 다카는 미국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일반 용어가 되었다. 다카가 불러온 효과와 이를 둘러싼 논란과 쟁투가 뉴스로 자주 등장한 덕분이다.다카는 의회의 법제화 과정이 필요 없는 대통령의 직권 행정명령으로 공표되었다. 이민 행정상 특별한 경우에 이미 적용되던 추방 유예는 가능해도 합법 신분 보장은 불가능하다. 행정부 기관인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서비스국(USCIS)은 2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그해 8월 15일부터 신청을 받았다.
봇물 터진 신청 행렬
다카가 본격 시행되며 신세계가 열렸다. 말하기 힘든 비밀을 감춘 채 숨죽여 살던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사람들이 일제히 존재를 드러냈다. 그들은 어릴 적 부모의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이주한 죄 아닌 죄를 숙명으로 안고 살던 서류미비 청소년과 청년이다. 서류미비자가 뭔지도 몰랐는데 대학 입학 원서를 제출하며 부모의 아픈 고백을 듣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현대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이 신분으로 등급이 나뉘는 상상외의 현실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남들처럼 자유의지에 따라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지 못하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런 청소년과 청년들이 다카를 신청하려고 대거 민권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정부 당국에 개인 정보를 넘겨주는 두려움보다 물에 빠져 죽느니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절실함이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민권센터 소속 변호사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규모였다. 우리는 추가 자원봉사 변호사들을 섭외하고 다른 한인 단체의 강당을 빌려 무료 메가 클리닉으로 신청 대행 업무를 수행했다. 오랫동안 드림 액트의 실현을 위해 싸웠던 단체와 만나기 힘들었던 당사자들이 조우한 감격스러운 광경이었다. 민권센터는 지금까지 신규 신청과 갱신을 합쳐 미 전체 한인 다카 케이스의 7%를 담당했다. 한국 출생 다카 보유인 숫자는 중남미 국가들을 제외하면 1위이고 전체 순위로는 6위다.
좌절된 첫발 ‘드림 액트’
다카 수혜인들은 ‘드리머’로 지칭된다. 드리머의 어원은 특정 법안에 근거한다. 2001년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 딕 더빈이 처음 상정한 드림 액트가 기원이다. 당시 시카고에 거주하던 한인 서류미비 청소년 테레자 이 씨의 안타까운 스토리를 접한 더빈 의원 사무실은 구제 법안을 마련했다. 자격 요건을 갖춘 서류미비 청소년에게 합법 이민 신분을 부여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씨는 연방상원에 상정된 드림 액트를 심의하는 자리에 증언자로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 씨가 워싱턴DC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던 바로 그날은 2001년 9월 11일이다. 테러는 무고한 생명과 함께 드리머의 꿈을 앗아갔다. 9·11 사건은 이후 드림 액트뿐 아니라 포괄적 이민 개혁의 향방에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했다. 드림 액트가 차질 없이 의회를 통과했다면 다카는 필요 없었다.
사회 발전의 한 축 된 ‘드리머’
다카를 취득한 드리머들은 말 그대로 꿈을 꾸는 사람으로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간의 경과를 보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민서비스국의 집계에 따르면 시행 이래 80만 명이 넘는 드리머가 다카를 취득했으며 2021년 12월 말 기준으로는 61만1470명이다.
다카는 확실히 개인과 사회의 차원에서 두루 긍정의 효과를 불러왔다. 드리머들은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합법 취업을 보장받아 경력을 쌓게 되었다. 대게가 저소득층인 이민 노동자 가족의 자녀들로서 가정 경제에도 한몫했다.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운전면허 취득으로 자동차 관련 각종 업계의 유력 소비자로 등장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역할을 담당했다.
아울러 이런 통계도 있다. 중도보수 성향과 시장주의 추구를 자임하는 싱크탱크인 아메리칸액션포럼(AAF)은 2018년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다카 취득 드리머들이 매년 재무부에 34억 달러, 연간 GDP에 420억 달러를 기여한다고 밝혔다. 배제가 아닌 포용의 정책으로 인한 결과다.
여전히 갈 길 먼 이민개혁
반면에 다카는 여전히 미봉책이다. 취임 후 100일 이내에 포괄적 이민 개혁 추진을 공약했던 오바마가 연임 선거를 치르는 해에 꿩 대신 닭으로 내민 당근이다. 그의 재선에 이민자 커뮤니티의 표는 절대 필요충분조건이었다. 다카를 취득해도 2년마다 갱신해야 하며 여전히 서류미비 신분으로 남는다. 드리머들은 다카로 약간의 숨 쉴 공간이 마련되었지만 대다수가서류미비자인 부모들은 아직도 이민 신분 해결이 기약 없는 상태다. 그나마 다카도 그동안 반이민 세력에 의해 수시로 법률 소송에 휘말려 폐지 위기에 직면하곤 했다.
다카만으로는 부족하다. 붕괴한 이민 시스템의 유일한 해결책은 정책 입안자들이나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포괄적 이민 개혁이다. 부분을 손질하는 방식은 붕괴한 이민 시스템을 근원부터 개혁하지 못한다. 다카를 도입한 오바마 행정부도 매년 40만 명의 이민자를 추방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엔 역사상 최악의 반이민 정책들이 이민자 커뮤니티를 강타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 포괄적 이민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의회에서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드리머’의 꿈, 포괄적 이민 개혁
다카 때문에 커밍아웃한 드리머들 중엔 이민 개혁 운동에 투신한 청년들도 많다. 본인의 안위와 성공을 넘어 다른 고난 받는 이민자들을 구하고자 나섰다. 민권센터에서도 많은 드리머들이 이민자 권익 옹호 활동가로 활약했다. 지금도 기억한다. 다카 시행 첫해에 민권센터에 본인의 다카를 신청하러 왔다가 자원봉사자가 되고 나중에는 정식 실무자로 활동한 드리머 친구가 있었다. 당시 맨해튼의 한 교회에서 뉴욕 지역 이민개혁캠페인연맹이 출범식을 하는 날 그는 연사로 무대에 등단했다. 그는 본인 가정의 이민 스토리를 소개하며 감정에 복받쳐 울먹였다. 한인 언론사에 송부할 사진을 찍고 있던, 감정이 메마른 중년의 활동가였던 나는 황급히 교회 구석으로 달려가 뜨거운 오열을 쏟았다. 61만4170개의 다카 수혜인 케이스엔 61만4170개의 절절한 휴먼 스토리가 녹아있다. 드리머와 그들 가족의 눈물을 닦아줄 유일한 도구는 포괄적 이민 개혁이다.
한국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다카 시행 10주년인 올해에도 이민 행정과 이민 개혁 논의는 요지부동이다. 드리머의 꿈과 이민자 커뮤니티의 미래는 포괄적 이민 개혁에 달려있다. 드리머의 꿈은 멈추지 않는다.
차주범 / 민권센터 선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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