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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주름진 손에 남은 세월

친구가 한국을 다녀오면서 전복 껍데기 안쪽의 화려한 무늬로 만든 반지를 선물로 가지고 왔다. 내 검지 손가락에 끼워주면서 외출 때 예쁘게 멋을 내 보라고 한다.  
 
반지 낀 손을 내려다보는데 눈살이 갑자기 찌푸려진다. 내 손이 곱지 않은 걸 알면서도 손등 주름에 왜 마음이 불편한지 모르겠다.
 
시집 와서 50년 넘게 김치를 담그고 매일 밥을 해 먹었으니 손등의 살갗인들 당해 냈겠는가. 이게 보기 싫다고 짜증이 날 일인가.  
 
마음을 바르게 고쳐 먹어야지. 그간 손은 지쳐있는 내 마음도 쓰다듬고 힘들 때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던가.  
 
그렇다. 서로 첫눈에 반해 결혼하고 먹여 살리느라 애쓰며 지내 온 세월. 힘없고 귀 어둡고 눈이 잘 안 보이고 다리가 흔들리고 인지력은 떨어지며 남은 건 주름뿐이다.  
 
꽃송이처럼 화려할 때는 좋아하고 힘이 있을 때만 좋아하면 되겠는가. 시들면 외면하고 힘이 사라지면 등을 돌리면 되겠는가. 얼마나 고마운 관계인가, 부부라는 것이.  
 
인생은 맞추어 가며 살아야 행복해진다. 골치 아프고 속상하고 마음 상하는 일들은 과감히 잊어버려야 한다. 삶에서 부딪히거나 다툴 일이 생기면 굳이 자존심 내세우며 다투지 말고 먼저 피하는 것이 지혜다. 매일 맞이하는 날을 새롭고 행복한 날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옳다.  
 
삶이 물안개처럼 우리를 감싼다. 삶에 대한 만족은 기본적으로 주관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삶과 현재의 삶이 무엇이 다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만족하는가가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어떤 동행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바뀔 수 있다. 존재가 귀하게 여겨져 사랑으로 대하게 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렇게 깊고 넓게 열린 자세로 마주하면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못 된 내 마음이 손에게 사과한다. 여기까지 같이 와 준 너.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더러운 빨래 빨아주고, 주름진 옷 다림질해 주며, 떨어진 양말 꿰매 준 너, 손아, 고맙다.
 
두 개의 다른 프레임 위의 캔버스. 둘 다 아름답고 더럽혀지지 않기를 원한다. 서로 세상을 떠나는 과정에서 발견되기 원하는 것은 한쪽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다른 한쪽 눈에는 반짝임의 의미가 있길 바란다. 어떤 그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연의 색상같이, 그 어떤 향수와도 견줄 수 없는 꽃의 향기처럼.
 
반쯤 내민 포니테일 팜의 초록 얼굴이 대문을 열고 보니 꽃봉오리를 펼치려 분홍색으로 물들어간다. 언젠가는 마주할 힘든 시간을 눈앞에 그리며 나도 잘해야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스린다.  

엄영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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