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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모래 두 포대와 패랭이꽃 모종

신호철

신호철

모래 두 포대와 패랭이꽃 한판을 차 뒤에 실어놓고 까맣게 이틀을 보냈다. 운전을 할 때 무언가 밀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별 생각 없이 차를 몰고 집으로 오곤 했다. 뒤란 데크 양쪽 끝에 깔린 블록을 보자 이틀 전 산 모래가 생각났다. 불록 틈새로 부쩍 이끼가 끼고 작은 잡풀이 올라와 틈을 파내고 그 사이를 메꾸려고 사놓은 모래였다. 부랴부랴 차 뒷문을 올리니 묵직한 모래 포대가 우측으로 밀려있고 구석 끝으로 패랭이꽃 모종이 꺼꾸로 처박혀 있었다. 모래 포대를 내려놓고 엎어진 꽃모종을 들어보니 모종은 온통 부러지고 휘어지고 꽃은 다 떨어져 말라붙어있었다. 햇빛 좋은 양지로 옮겨 물을 흠뻑 주고 하루를 지났는데도 상한 모종은 허리를 펴지 못했다. 골병이 든 사람처럼 구부정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정원 잡풀을 뽑고 Merch를 깔아주다 보니 구석구석 휑한 부분이 있어 그곳에 꽃을 심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처럼 하루종일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더니 오후 간간이 햇빛이 보였다. 비가 뿌리면 맞으리라 생각하고 더 늦지 않게 모종을 심기로 했다. 꽃 모종에는 호미가 제격이었다. 호미로 흙을 찍어 파내고 구부러진 줄기를 조심조심 세워가며 모종 한판을 심었다. 마지막 모종을 심고 일어나는데 후더 자켓에 비가 스며들어 묵직했다. 몇 밤 몇 날이 지나야 구부러진 허리를 펼까? 병 주고 약 주는 꼴이 된 듯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래 두 포대와 패랭이 모종 한판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더니 우리에게 그 정도는 이제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다고 하면서 한 지인은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냄비에 국을 올려놓고 불을 끄지 않고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온 집안이 퀘퀘한 연기와 냄새로 가득했고, 큰 냄비에 가득 담겼던 국이 바닥에 눌러 붙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했다. 또 한 지인의 부인은 부엌에 무엇을 가지러 왔는데 도무지 알 길이 없어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다가 다시 올라왔다는 이야기. 동네 모퉁이로 차를 드라이브하다 차고 문을 내렸는지 다시 돌아와 내려진 차고문을 확인하는 절차를 두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외출을 할 수 있었다는 썰렁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그랬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기계도 오래 쓰면 손을 봐야 하고, 칼도 오래 사용하면 날을 세워야 하는데, 튜닝안 된 자동차가 덜컹이며 움직이듯 삶의 리듬이 무언가 언밸런스한 나이가 되었나 보다. 모래 두 포대는 이미 블락 틈새를 메꿨고 패랭이꽃 모종은 이제 꾸부정했던 허리를 펴고 노랑, 보라, 하얀꽃들을 피우니 나의 목적은 이룬 셈이지만 이 씁쓸한 느낌은 무어라 설명해야할 지. 그냥 받아들여야 할 일상이 되어버린 건가? 이젠 불현듯 찾아오는 건망증마저 정상이려니 여기고 받아주어야 하나? 그렇게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저녁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니까. 그렇게 망각하고 싶은 저녁은 종종 나에게도 찿아오는 것인가 보다. (시인, 화가)
 


 
 
건망증
 
 
강을 따라 흐르다 멈춘  
고목이 누운 발 끝
은빛 비늘처럼  
살아나는 물고기 눈
긴 세월 흐르다 서로 만나  
뒤 돌아 얼마나 걸었을까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마다
뿌리로부터 멀어져
숲길에 누이는데 우리는  
어디쯤에서 무엇이 되어 만나려나
서로 발끝을 건드리며
채워지는 두런거림으로
먼 거리를 흐트러지며
기억을 담지 못한 정물처럼
너는 그렇게 오고 있구나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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