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성과 히치콕의 조화, 박찬욱의 누아르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현지의 언론들은 개막 전 박찬욱이 히치콕 스타일이 가미된 누아르 '헤어질 결심'으로 돌아왔다고 그의 컴백을 환영했다. 그리고 2006년 그가 '아가씨'로 황금종려상을 아쉽게 놓친 기억을 상기하며 특별히 박찬욱과 중국 여배우 탕웨이와의 결합에 주목했다.
박찬욱은 봉준호 이전부터 칸이 사랑하는 감독 중 하나로 꼽혀왔다. 칸에 처음 진출한 '올드보이'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이어 '박쥐', '아가씨'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2019년 '기생충'의 쾌거로 완성된 한국 영화의 칸 연대기는 사실 박찬욱으로부터 시작됐다 해도 좋을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경찰과 용의자, 연인과 적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져 가는 로맨틱 스릴러이다. 미해결 사건에 휘말린 경찰 해준(박해일)과 산에서 추락사한 등산가의 미망인 서래(탕웨이) 사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단순 추락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해준은 남편의 죽음에도 침착하기만 한 서래의 묘한 분위기에 이끌린다. 알리바이가 완벽한 서래와의 만남을 거듭할수록 해준의 마음은 사랑과 의심으로 교차한다.
앙리 감독의 스파이 드라마 '색계(Lust, Caution, 2007)'에서 보았던, 탕웨이의 순수하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등장은 처음부터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내면으로부터 뿜어 나오는 그녀의 조용한 카리스마가 영화의 전반적인 감성을 전달하는 중심적 요소로 평가됐다.
'헤어질 결심'은 히치콕 스타일의 긴장과 음모, 캐릭터들의 감정적 대립, 휴대폰 기술의 독창적인 사용, 탁월한 반전, 그리고 균형을 잃지 않는 각본과 긴장감 넘치는 음악으로 두루 찬사를 받았고 스크린데일리로부터는 최고 평점을 받았다. 자연스레 이번에는 박찬욱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박찬욱은 그의 대표작 '아가씨'를 통해 서스펜스 스릴러에 능숙한 감각을 과시했다. 그가 서스펜스 장르의 고전인 히치콕 스타일에 도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과거 작품들에서 우리는 관객들에게 상상을 건네는 중의적이고 모호한 시퀀스, 문어체 대사,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 결코 명쾌하지 않은 결말 등 박찬욱 영화의 특징들을 경험해왔다.
'헤어질 결심'은 왠지 시간이 흐를수록 모호성이 쌓이고 사랑의 가능성은 멀어져 가는 영화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모호함과 부조리는 늘 박찬욱이 연출해낸 반전들의 키워드들이었으니까.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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