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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진심이 담긴 배려

“장애로 인한  
불편함보다  
장애 때문에  
받는 차별이  
더 큰 문제다”
 
지난 4월에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 올해의 남우주연상 후보인 윌 스미스가 부인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사회를 보던 크리스 록은 탈모증으로 머리를 밀어버린 스미스의 부인을 향해 ‘지아이 제인’ 2편을 보고 싶다며 농담의 소재로 삼았다. 순간 격분한 스미스는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록의 뺨을 때렸다.  
 
록이 스미스에게 사과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여론은 스미스에게 불리하게 흘렀다. 원인 제공자에게 일차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었는데 상처를 후빈 설봉(舌鋒)은 날이 지나면서 무뎌지는 느낌이었고 검봉(劍鋒)을 휘두른 쪽에 비난의 추가 기우는 것을 보며 장애인의 천국이라는 미국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낙동강 600리가 유유히 흐르다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 직전 허리를 살짝 틀어 물길을 낸 남도의 소도시에서 초등학생 시절의 끝자락을 보냈다. 오래 끌던 휴전협정이 조인되어서 마침내 전장에 포성은 멈췄지만 포연은 여전히 자욱한 피란지의 샛강에서 다슬기를 줍고 물장구를 치며 해가 저물도록 놀았다. 서울로의 환도 소식은 까마득했지만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았고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다. 그토록 근심 걱정 없는 우리에게도 학교에 가면 명심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한 학급에 장애아가 한 명쯤은 있었는데 우리 반엔 두 명의 여학생 장애아가 있었다. 한 친구는 한쪽 다리가 많이 휘어서 걸음걸이가 불편했고 한 친구는 한 쪽 눈의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이 아이들을 놀리면 엄격한 담임 선생님에게 남자아이들은 막대로 엉덩이를 세 대씩 맞았고 여학생들은 눈물이 쏙 빠지게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았다.
 
10대 초반의 철부지들이 장애인에 대한 배려심을 무늬만이라도 갖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의식의 밑바닥에 이미 장애인은 하자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자녀의 혼사를 앞둔 집안에서는 장애 형제자매를 숨기기에 급급했고 식구들에게 철저히 입단속을 시켰다. 천막 교실 바닥에 책걸상 대신 가마니가 깔린 엉성한 학교에서도 담임 선생님의 규율과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엄하기 그지없었다.
 
어느덧 우리들은 선생님을 따라 장애아에게 위장된 배려를 베풀기 시작했다. 누가 장애아 친구를 조롱이라도 하면 떼를 지어 그를 규탄하고 온 반이 나서서 장애 친구 편을 들었다.  
 
그렇게 집단 위선이 모르는 새에 쌓여가던 무렵, 반에서 일이 터졌다. 다름 아닌 장애아 두 친구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한 명이 눈을 놀렸고 다른 애는 불편한 다리를 조롱했다는데 학교가 떠나가라 울어대는 두 친구를 붙들고 일의 발단과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사람은 담임을 포함해 아무도 없었다. 두 친구는 일주일이 넘도록 결석했고 두 집 부모만 번갈아 학교에 다녀갔다.  
 
온 반이 패닉에 빠졌다. 어느 쪽이건 가담해서 편을 들어야 하는데 어느 편을 들지 몰라 혼란스러웠고 채 여물지 못한 위선은 방향을 잃었다. 어수선하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일의 실마리가 풀렸다. 험한 말을 누가 먼저 내뱉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폭력을 쓴 쪽이 밝혀진 것이다. 눈이 불편한 친구가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먼저 밀쳐서 쓰러뜨렸다는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가담할 편을 결정할 수 있었고 비난할 대상이 정해진 것에 안도했다.  
 
시상식 폭행 사건을 일으킨 윌 스미스에게 10년간 시상식 참석을 금지하기로 했다는 아카데미의 처사가 가혹하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의 철없던 우리도 비수로 찌른 것에 못잖은 양편의 설봉은 슬그머니 잊어버리고 검봉을 휘두른 쪽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지 않았던가. 우리가 쏘아 올린 비난의 화살을 맞고 학교를 떠난 친구가 생각난다.  
 
장애는 장애로 인한 불편함보다 장애 때문에 받는 차별이 더 큰 문제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 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 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되어 간다고도 한다.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인식이 바뀌어야 장애인에 관한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이다.  

박유니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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