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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대화의 출발은 경청이다

열흘 전쯤 갑자기 인터넷 속도가 느려졌다. 줌으로 이사회를 하다가 연결이 끊어지고, 아내는 유튜브가 안 열린다고 불평이다.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하니 상담원은 상투적인 콜센터 직원의 대본을 말한다. 전원을 껐다, 30초 후에 다시 켜라. 연결선들을 모두 풀었다, 다시 연결하라.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며칠 후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에도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비슷한 과정을 거친 후, 모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모뎀을 새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무래도 모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주말 아침, 다시 전화를 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상담원은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10분 만에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갑자기 인터넷이 잘 터지니 묵은 체증이 사라진다. 고맙다고 하며 어떻게 다른 상담원이 해결 못한 것을 쉽게 고쳤냐고 물어보니, 그냥 웃는다. 아마도 경험이 많은 직원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가 다른 상담원들과 달랐던 점은 대화하는 방법이었다.
 
앞의 두 상담원은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다. 콜센터의 대본에는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대처하고,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대처하라는 요령이 나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상담원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고 문제를 정확히 진단했던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아내는 요즘 다람쥐와 전쟁 중이다. 복숭아나무의 열매가 커지자 매일 다람쥐가 와서 따먹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100개도 넘게 달렸던 복숭아를 모두 그놈들에게 빼앗기고 우리는 겨우 3~4알을 먹었다.
 
아내는 복숭아를 지키겠다고 나무에 그물을 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람쥐는 틈을 만들어 복숭아를 따먹고, 다음날이면 아내는 보수 공사를 한다.
 
만약 다람쥐와 대화가 가능하다면, 아주 쉽게 해결될 문제다. 익지 않은 아삭한 열매를 좋아하는 다람쥐에게 나무에 달린 열매의 절반을 주겠다고 하면, 다람쥐가 열매를 솎아주니 우리는 크고 달콤한 절반의 열매를 먹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놈들과는 대화가 안 되니.
 
대화의 열쇠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일이 아닌가 싶다. 말은 끝까지 잘 들어보아야 화자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말을 듣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생겨난다. 그리고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나 뜻을 내 마음대로 판단해 버린다. 대답할 말을 준비하는데 신경을 쓰다 보면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제대로 듣지 못한다. 심한 경우에는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고, 나머지 말은 흘려버린다. 대화는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치기도 한다.
 
60여년 내 삶을 돌아보아도 폭력이나 손실로 입은 상처보다는 말로 인한 상처가 훨씬 더 깊고 오래간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하지 않았나. 힘든 사람 곁에서 진지한 눈빛으로 이야기만 들어주어도 그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된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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