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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한 코로나는 ‘정치적 재앙’

많은 이들처럼, 필자는 북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실제 상황이 됐다. 지난 12일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음을 알린 뒤 확진자·사망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바이러스 학자들은 전국적 확산은 시간문제이며 치명률도 2%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수십만이 사망할 수 있다는 얘기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떠올리는 재앙이다.
 
북한 정치국회의는 최대비상방역체계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긴급 의약품 배포, 소독, 철저한 봉쇄 조치를 한다는 것인데, 중국 사례로 보듯 이 조치로 오미크론 확산세는 늦추겠지만 막을 순 없다. 봉쇄된 상하이 시민들은 식료품과 의약품 부족으로 참혹하게 지냈다. 그나마 식료품을 사재기할 수 있었지만 북한에선 봉쇄 조치가 긴급하게 취해진 데다 주민들이 식료품을 대량 구입할 재정적 여력도 없다.
 
주민에겐 인도적 재앙이고, 북한 정권엔 정치적 재앙이다. 지난 2년 국경 봉쇄로 코로나를 막을 수 있다며 백신도 필요 없다고 역설해온 북한 당국은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졌다.  
 
주민들은 식량 부족으로 면역력도 낮다. 코로나는 지방 협동농장 농민뿐 아니라 북한 정권 유지의 기반인 평양의 엘리트층도 강타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 상황을 ‘건국 이래 대동란’이라고 표현한 건 과장이 아니다. 14일 노동신문에선 “국가 안전을 믿음직하게 지켜낼 수 있다”고 했는데, 북한 정권의 안위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과 같다. 정보가 부족하고 정보 불신이 강한 북한에선 루머가 곧 공포를 확산하고, 공포는 다시 분노를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북한이 질서정연한 사회이고 주민들은 당국에 순종한다고 믿곤 한다. 그러나 2009년 섣부른 화폐 개혁을 하고 ‘돈주’의 화폐를 몰수했을 때 폭동과 시위가 일어났고, 북한 정권은 죄 없는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하고 없던 일로 되돌렸다.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위기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다시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김정은은 “이번 사태가 당조직들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가, 특정 세력이 문책당하고 총살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지경을 만든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는 없다. 분노한 주민들이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봉쇄명령을 어기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 코로나가 북한군 내에도 확산하고 기지가 봉쇄되면 군의 반란도 일어날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이를 모면하기 위해 핵실험 같은 이벤트를 선택할 수도 있는데, 그런 행동은 북한 정권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게 된다. 제20차 당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와중에 코로나와 경제 침체로 골머리를 앓는 중국을 화나게 할 것이고, 국제 사회도 북한에 대한 동정심을 거둬들일 수 있다.
 
더욱이 북한 정권의 의도와 달리 이미 여섯 차례나 한 핵실험을 한 번 더 한다 해서 북한 주민이 크게 감동할 것 같진 않다. 주민 생명이 코로나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부족한 자원을 핵 실험에 낭비한다는 분노와 불신으로 역효과만 낼 수도 있다. 이 경우 북한 정권엔 최악이다. 그렇다고 북한 정권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란 얘긴 아니다.
 
북한 정권은 현재 위기를 풀 실마리조차 못 찾고 있다.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 벨라루스에서 보듯 코로나 대응 실패로 인한 국민 분노는 하루아침에 정권 안위를 위협할 수 있다. 북한은 바나나 껍질이 깔린 길을 위태롭게 걷는 주정뱅이 행보를 오랫동안 보여왔다. 지금까진 운과 우방국 도움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한 번만 잘못 밟아도 넘어질 수 있다. 정권 붕괴다. 북한은 지금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정말 크고 미끄러운 바나나 껍질 위에 있다.

존 에버라드 /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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