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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인종주의와 총기규제

김완신 논설실장

김완신 논설실장

미국적인 특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두 가지 문제는 ‘인종’과 ‘총기’다. 인종 문제는 흑인 노예를 데려온 ‘원죄’로 지금도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 다인종 국가 미국이 안고 가야 할 숙명이 됐다. 총기는 규제의 어려움이 문제다. 총기 소유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고유권한으로 인식돼 정부 제재를 벗어나 있다.  
 
인종주의와 총기문제는 각각 미국 사회의 병폐로 작용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둘의 결탁이다. 인종주의자의 손에 총기가 쥐어진 경우다.  
 
14일 뉴욕주 버펄로 마켓에서 18세 백인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10명이 사망했다. 용의자 페이튼 젠드런은 자신을 백인우월주의자·반유대주의자라고 밝히고 ‘흑인을 많이 죽이겠다’고 공언했었다. 다른 마켓에서도 흑인 총격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11일 댈러스 한인 미용업소에서도 무차별 총격이 발생했다. 경찰은 인근 아시안 업소 4곳도 피해를 당했다며 인종 증오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체포된 용의자 제레미 테론 스미스는 아시안에 극도의 공포감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인종주의에 총기가 합쳐지면 대량살상의 개연성은 커진다. 범행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증오하는 인종의 다수를 겨냥한다. 대량살상(Mass Killing)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총기범죄기록보관소(GOA)의 기준인 4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를 대량살상으로 분류한다. 이전에 발생한 인종 관련 총격은 대부분 대량살상의 참극으로 끝났다.  
 
인종 갈등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총기는 범죄의 주요 수단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2019년 통계에서 미국인 10만 명당 4.38명이 총기로 피살됐다. 총기를 사용한 자살과 총기 오발로 숨진 사고를 포함하면 10만 명당 12.21명(2017년 기준)으로 높아진다. 미국의 총기살해 비율은 세계 전체 순위에서는 낮지만 선진국 중 단연 1위의 불명예를 기록한다. 2016년 기준 전 세계에서 25만 명이 총기로 사망했고 그중 미국은 3만7200명이 숨져 브라질 다음으로 많다. 총기 사망자 톱10에 선진국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최근 수년 사이 인종주의와 총기난사가 결합한 대형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2019년,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히스패닉을 증오하는 백인 남성이 총기를 휘둘러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범인은 성명서를 통해 히스패닉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다.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는 ‘인종 투쟁’을 외치는 용의자의 총에 9명의 흑인이 숨졌다.  
 
이전 미국의 인종 갈등은 흑백간의 문제였다. 하지만 라틴계와 아시안 등의 이민자가 늘어 양상이 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시작하면서 아시아 증오범죄가 급증했다. 아시아태평양계 단체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 아시안 증오범죄가 3.5~4배 폭증했다. 지난해 3월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파 총격 사건으로 한인을 포함해 8명이 사망했다. 백인 인종주의자의 아시안 증오가 범행동기였다.  
 
총기 반대론자는 총기 소유가 범죄를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연방수사국(FBI)이 2019년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행 도구를 조사한 결과다. 총 1만3922건 중 1만258건에서 총기가 사용됐다. 4명 중 3명이 총기에 목숨을 잃었다.  
 
버펄로 참극으로 인종주의자의 증오범죄에 비난이 거세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인종주의와 폭력은 혐오스럽고, 미국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범행의 도구가 됐던 총기 규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뿌리 깊은 인종 갈등을 불식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인종주의자의 손에 총기가 들려지지 않게라도 해야 한다.

김완신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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