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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새들의 노래

신호철

신호철

한낮의 태양이 기울기 시작한지 두시간쯤 지났을까? 난 데크의 턱이진 계단에 앉아 정원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닥에 거의 엎드린 초록의 잎들을 언제 밀고 올라왔는지, 보랏빛이 감도는 꽃대궁들이 뾰족히 올라오고 있었다. 강한 햇살로 대궁의 반쪽은 빛나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자리에서 일어나 데크 펜스에 두 팔꿈치를 기대고 서서 오랫동안 고개를 들고 제 키를 키우고 있는 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햇볕은 강렬했지만 그보다 꽃대궁은 몇배나 더 씩씩하게 보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시카고 근교 어느 집 오후, 뒷뜰, 태양은 강렬했지만 꽃들은 분주했다. 덩달아 새들의 노래도 한층 잦아들었다.
 
새들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다. 언젠가 TV에서 새들을 휘파람으로 부르고 손등에 앉히는 행복해 보이는 한 남자를 보았다. 신기하게도 같은 행동으로 비슷한 휘파람으로 새들을 유혹해도 새들은 절대 다른 사람의 손등엔 앉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나타나면 어느 사이 그의 주변으로 날아와 그에게 관심을 표현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본 후 수 년 째 새들만 보면 그 새 소리를 흉내내면서 새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창가에서 새 소리를 듣기만 하면 조심조심 손톱으로 창문을 두드려 소리를 내기도하고, 급기야 데크의 슬라이딩 도어를 살짝 열고 까치발로 새가 앉아있는 나무로 향하다 푸드득 날아 저 멀리 높은 나무 끝으로 날아 가버린 녀석을 향해 열심히 새소리를 흉내 내도 녀석은 절대 내게로 날아와 주지 않았다.  
 
새들이 덱크 주변의 나무 위를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자세히 새를 관찰하다 보니 새들은 일단 나무에 앉아 주위를 살핀 후 턱이진 펜스 구석으로 사라지곤 했다. 가까이 가 보았더니 잘 만들어 놓은 둥지가 있었고 그 속에는 파란 옥색의 새알이 세 개나 있었다. 얼마 후 다시 가보니 눈 주위에 하얀 테두리를 가진 딱새 한마리가 알을 품고 있었다. 한낮의 더위도 아랑곳없이 미동도 없이 한 나절 내내 날개를 모아 따뜻한 체온으로 알을 품고 있었다. 세상 어느 어미라도 저랬으리라 생각이 드니 알을 품고 있는 새의 눈매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새는 둥지에 하루에 한 알씩 알을 낳아 마지막 알을 낳을 즈음부터 알들을 품기 시작한다. 부화의 시기는 그로부터 2주정도 혹 그 이상을 품어야 부화되는 새들도 있다. 알을 품는 것은 어미새의 몫이고 수컷은 수고하는 어미를 위해 먹이를 제공해 준다. 어미새는 날개를 접어 바깥쪽에 있는 알을 중앙으로 옮기고 알을 굴려 따뜻한 체온을 일정하게 알 표면에 골고루 전달해준다.
 


새가 날개를 접고 배를 땅에 닫게 엎드렸다는 것은 날기를 포기했다는 증거다. 새는 날아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끼를 부화하는 일이다. 몇 일 몇 밤을 품어도 피곤한 내색이 없다. 온통 어미새의 머릿속엔 부리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어린 새들의 모습뿐이다. 앞으로도 2주 동인 소중한 것들을 얻기 위해 날기를 포기하는 새들의 모성애를 눈앞에서 보고 있다. 꽃들이 분주한 이유도, 새들의 노래가 잦아든 이유도 더 나은 것들을 위해 내 것을 포기하는 몸부림이다. 
 
나뭇가지 잎사귀가 새순을 내려고 그 아래로 내려가 스스로 새 순을 떠받히는 것도,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먼저 핀 나의 꽃잎을 떨구는 모습도, 온종일 날아야 할 딱새가 날개를 접고 둥지에 꼼짝없이 알을 품고 있는 봄날의 풍경.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나를 포기하는 봄날 뒤란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불어오는 바람도 풍기는 꽃향기도 사랑으로 향하는 길이 되고 있는데 나는 누군가를 위해 나의 것을 포기한 적이 있는가? 나는 그 사랑으로 난 길을 위해 내 것을 내려놓은 적은 있는가라고 자꾸 내게 묻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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