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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젖은 돌

열 번 남짓 가 보고 천 번을 그리워하는 거리
 
디아스포라 삶의 이전, 유년을 만날 수 있는 곳
 
골동품 상점문을 여니 세월이 누워있네
 
 
 
처마 밑에 나와 조르륵 앉아 있는 돌절구들
 
주근깨 동이 아줌마 말라깽이 이모 고향의 옛 얼굴들
 
실로 꿰맨 쪽박으로 대야에서 물을 떠 돌 위에 끼얹는 주인 남자
 
실금이 가고 구멍이 숭숭 뚫린 돌절구에 물이 스며드는데
 
아득해라
 
늙은 돌절구
 
젖어 드는 몸을 안고 웃는 듯 우는 듯
 
한 생을 건너는 여인의 푸념을 들어주다 말을 잃은 돌절구
 
 
 
덥석, 안아 그 무거운 돌덩이를 사 들고 골목을 나서는데
 
 
 
인사동이 떠나갈 듯 찢어지는 울부짖음  
 
미친 여자 한명을 둘러싼 구경꾼들
 
“누구나 저렇게 될 수 있어….”
 
검고 깊은 우물 같은 군중 속의 누군가의 목소리
 
한 명 두 명 흩어지는 낙타 등의 발걸음들 사이로
 
못 본 척 돌아서
 
여인의 목구멍에 걸린 칼바람에 젖은 숨을 고르는데  
 
손에 들고 있던 물 젖은 돌절구가
 
잠시 땅에 내려놓고
 
쉬어가자 속삭이네.

곽애리 / 시인·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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