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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

나는 교육의 다양한 정의 중에 ‘아이를 사회 안에서 기능할 수 있는 독립된 성인으로 길러내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도 혼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회사의 비전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별 걱정 없이 아이가 직업을 가진 성인이 될 것을 기대하겠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성인기에 독립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목표이다. 스스로 옷을 입기, 음식을 준비해서 먹기, 길을 찾아가기.  
 
그러나 아이가 하는 것이 영 불안하고 성에 차지 않으니 계속해서 손을 대게 된다. 날씨에 맞는 옷을 골라주고, 옷 끝을 잡아당겨서 매무새를 만져준다. 음식을 준비해주고, 숙제를 했는지 묻고 결과를 봐준다. 여름을 맞아 외부 활동을 위한 지원 서류를 작성하다가 “혼자서 ○○를 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 앞에서 멈칫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의 입사 조건은 ‘혼자서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이를 어떻게 잘 키워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베어베터 이진희 대표는 “아이가 혼자서 시도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세요”라고 대답한다. 부모가 계속 도와주고 대신해줬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도 아주 간단한 문제도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부모가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결정해준 결과로 아이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없이 어른이 되는 것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아이가 미숙한 상태에서 스스로 배우는 시간을 참고 지켜보지 못하는 것은 어떤 부모들이나 비슷하다.  
 
자녀의 대학입시나 경력에 과도하게 개입한 고위관료와 정치인들의 뉴스가 지치지도 않고 신문 지상을 장식한다. 미국에서는 2019년에 입시 컨설턴트가 큰 돈을 받고 명문대학의 입학 서류를 날조한 스캔들이 크게 터져 한창 재판이 진행 중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엘리트 세습: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대니얼 마코비츠)이라는 책은 교육 성과를 기반으로 한 능력주의가 기득권층의 아이들을 과도한 학습과 불안으로 내몰고, 공교육을 받는 중산층의 정상적인 성취를 방해함으로써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최근에 잘 갖춰진 이력서를 갖고 있지만 자기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는 젊은이들을 왕왕 만난다. 잘 준비된 답변을 하지만 추가 질문에는 답을 잘 못 하거나, 코딩 시험에서 답안을 베껴서 제출하는 경우, 과제를 준 이후에도 자세한 지시를 마냥 기다리는 경우들을 만난다.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해서 가능성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아이들만큼이나, 똑똑하게 태어나 공부도 열심히 했으나 정작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채 성인이 된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가슴이 아픈 일이다.
 
“아이가 혼자서 시도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세요.” 어느 시대에나 적용될 만한 현명한 조언이지만 부모가 쉽게 할 수 있는 결심이 아니다. 아이들 수보다도 더 많은 대학이 있다는데,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치열한 경쟁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과도한 사교육에 동의하지 않아도 적당한 선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대학 입시에 창의적으로 개입한 사회 지도층들의 이야기가 연일 보도되면서 공정성에 대한 의문과 박탈감은 깊어진다. 현재의 시스템은 어른들이 미래 세대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올해의 입시제도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다음에는 저쪽에서 또 이쪽으로 바꾸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어른들의 간섭이 미래 세대를 무력하게 만들고 교육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뼈아프게 반성할 시간이다.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음 세대가 키워야 할 역량이 무엇일지, 아이들이 혼자서 시도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개입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욕망을 어떻게 막아낼지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일이 너무나 시급하지 않은가.

이수인 / 에누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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