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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보수와 진보의 ‘낙태권 전쟁’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법률 문제로 시끄럽다. 한국은 검수완박, 미국은 낙태권 문제다. 한국은 국회, 미국은 대법원이 논란의 중심지다. 검수완박이나 낙태권 제약 모두 겉으로 보면 이 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어젠다가 더해지면서 전국민이 관심을 갖는 사안이 됐다.  
 
한국의 검수완박은 야권이 된 진보진영이 공격을 하고 여권이 된 보수진영이 방어를 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낙태권 문제는 야권인 보수진영이 공격하고 여권인 진보진영이 방어하는 형국이다.  
 
검수완박이나 낙태권 제약에 대한 법리 논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검수완박이나 낙태권 제약은 무조건 정치적 논리로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두 사안을 몰아붙이는 진영의 행태가 아름답지 못할 뿐이지, 사실 두 법률의 취지는 나름대로 논리가 있어 무작정 비난하기 어렵다.    
 
검수완박의 경우 한국사회의 오래된 고질병 중 하나인 비대하고 부패한 검찰력의 정상화를 위해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고 이를 통해 견제와 균형이 이루겠다는 목표가 있다.  
 
낙태권 제약의 경우는 태아도 하나의 존엄한 생명체로서 보호 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명권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한다.  
 
법안 각각이 취지와 목적이 있음에도 이들 법안은 진영논리 속에 파묻혀 국민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두 가지 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거나 그 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기 진영이 속한 쪽에서 찬성을 하고 반대를 하니 무작정 찬반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한 치의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인다.  
 
두 법안은 간단하고 명료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미주의 한인들에게 검수완박보다는 낙태권 제약이 더 뜨거운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낙태권 제약은 여성 권리와 태아 생명권이 명확하게 충돌하는 영역이다. 산모의 건강이 위험할 때, 또는 근친상간, 강간 등으로 생긴 생명체를 그래도 살려내야 하는가의 문제에 답이 쉽게 나올 수 없다. 근친상간, 강간 등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인생도 결코 축복 받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과 모든 생명체는 신 앞에서 평등하고 그 생명체에는 신이 내린 의미가 있어 그걸 함부로 인간이 뺏을 수 없다는 관점이 충돌한다.  
 
진보진영에서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의 권리야말로 헌법상에 보장된 사생활의 자유이고 이를 통해 낙태권도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보수진영에선 애초에 헌법에 그런 사생활의 자유도 낙태권도 보장된 적 없고 그건 판사들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낙태권 제약 문제는 최근 터진 연방대법원 판결문 유출사고로 극을 달리고 있다. 여성의 낙태권을 사실상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1973년의 ‘로 v. 웨이드’의 판결을 뒤집는 다수의견이 담긴 판결문이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유출되는 사고가 최근 터졌다. 상상도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고 존 로버츠 대법관이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낙태권 제약이 이제 기정사실화 되는 것 아니냐며 여성단체와 진보단체들의 반발이 크다. 낙태권 제약에 찬성한 5명의 보수판사 중 2명은 대법원 판사 후보 청문회 때 ‘로 v. 웨이드’ 판결을 뒤집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도 했었다.  
 
다수의견이 담긴 판결문이 어떻게 유출됐는가를 놓고 시끄러워지겠지만 앞으로 이 판결문이 세상에 나오면 미국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김윤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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