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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세 나라에 걸친 어머니의 삶

그러니까 벌써 10여년 전, 검은깨를 한 봉지 사 온 날이었다. 찬물에 훌훌 씻으니 물이 새까맣게 변했다. 몇 번만 헹구면 되겠지 했는데 물을 갈아줄 때마다 똑 같은 농도의 검은 물이 나왔다. 염색한 중국 깨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검은깨를 씻으니까 자꾸만 검은 물이 나오네요.” “그래? 안 그런데. 몇 번 씻으면 물이 깨끗해지는데….” “엄마, 검은깨니까 검은 물이 나오는 거 아니에요?”  “야가, 뭐라카노. 그라몬 흰둥이가 목욕하몬 허어연 물 나오고, 노란둥이 목욕하몬 노오란 물이 나오더나?”  
 
어머니는 일제시대에 경상도 함안에서 태어나셨다. 네 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후 해방이 되자 한국에 나오셨다. 그때는 열여덟 살 나이에 이미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둔 상황이었다. 귀국을 해서는 시댁에 들어갔는데 한국말을 몰라 바보 취급을 당하셨다고 했다. 그때 일어난 시댁 식구들과의 에피소드를 들을 때면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하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한국에서 32년을 살고 나이 쉰 한 살이 되던 해에 이번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세 나라에 걸친 인생길을 걸어오신 셈이다. 유년에서 청년까지,  청년에서 장년까지, 장년에서 노년까지 살아온 세 나라 중 어머니는 어린 시절의 나고야를 가장 그리워하신다.  
 


몇 년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나고야 옛 동네를 찾아 갔다. 노구를 이끌고 70여 년 만에 돌아본 그곳은 기억 속의 장소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자전거를 몰고 다니던 개천가 흙길만 그대로 있을 뿐 식구들이 두레상을 가운데에 두고 둘러앉았던 그 집은 날씬한 양옥으로 변해 있었다.  
 
장사꾼의 외침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개천가에 앉아 어머니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신 듯했다.  
 
막내 동생을 자전거 앞자리에 앉히고 골목길을 달리던 씩씩한 시절도 있었노라 회상하는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까지 번졌다. 누나를 따라 다니던 동생도, 자전거를 날렵하게 몰던 자신의 모습도, 참 예쁘다는 칭찬을 해 주던 동네 어른도 선명하게 보이는지 어머니는 허공으로 이리저리 먼 눈길을 보내셨다.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앳된 소녀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차가운 땅바닥에서 일어날 생각도 안 하셨을까. 우리는 그 동네를 몇 시간이나 빙빙 돌다가 해가 떨어질 무렵에서야 호텔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이제 아흔 다섯 살이 되셨다. 거동이 불편하여 보행기를 밀고 다니신다. 우리를 볼 때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나를 안 불러주실까 한숨을 쉬시기도 한다.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를 못 보실텐데 그래도 가고 싶으시냐고 여쭈면 항상 대답은 똑 같다. “너희들 보는 건 좋은데. 너무 고생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해서….”  
 
이 연세에도 맑은 정신과 깨끗한 모습으로 계신 어머니를 뵙는 건 하나님이 주신 또 하나의 축복이다. 나는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 아버지 곁에 가실 때까지 지금처럼 건강하게 지켜주세요.

성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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