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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어머니의 양귀비꽃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어머니날을 맞은 주일에는 교회에서 성가대의 특송으로 늘 듣는 곡이다. 우리는 머리를 약간 숙이고 울울한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듣는다. 누군가가 들릴 듯 말 듯 따라 부르는 소리를 시작으로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 같은 소리가 들린다. 우물우물 씹다가 삼켜 드는 소리. 혹은 톤을 지니지 못한 울렁거리는 소리. 끝내 다 부르지 못하고 참다 참다 터져 나오는 마디를 갖추지 못한 흐느낌 같은 소리.  
 
성가대의 합창에 맨 처음 따라 부른 이는 아직 살아 계신 어머니를 둔 자식이기 쉽다. 이미  어머니를 여윈 자식은 쉽게 목이 소리를 밀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슬아슬하게 살아 계실 때는 이러다 나중에 후회하지 싶은 일도 결국 만들고 만다. 세상의 자식들은 절대 효자도, 절대 불효자도 없는 것 같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속울음을 안 울어 본 자식이 없겠기에 하는 말이다. 절대 효자였다면 보내드리고 후회할 일 없을 것이고, 절대 불효자였다면 이 역시 보내드리고 울 일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태에서 나온 한 지체이니 어머니를 향한 사랑은 신앙이다.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는 절대적인 신앙.
 
지난해 늦가을 담벼락 담쟁이 이파리들이 꼬장꼬장 말라갈 즈음 어머니를 양로병원으로 옮겨드렸다. 담쟁이 잎은 마를 대로 말라 추레한 몰골을 하고 곧 떨어질 듯 간들간들하면서도 며칠이 지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세상에 대한 애착인지 집착인지 알 수 없는 강한 생명력을 연민으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아침에 눈이 뜨이는 대로 눈여겨 둔 담쟁이 잎부터 찾았고 그렇게라도 붙들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마음이 놓였다. 그런 날은 어머니에게 가는 발길이 가볍다.
 
가을도 깊어 몇 차례 드센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소리가 거칠수록 나는 담쟁이 잎이 걱정되었다. 나가 보자니 혹시 모를 그 허전함이 두려웠다.  
 
이른 아침 부리나케 나가 본 담벼락에 그 잎은 자취가 없고 잎자루를 물고 있던 가지 사이에 움푹 파여 떨켜만 드러나 있었다. 마음이 내려 앉은 나는 그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그로부터 이틀 후에 낙엽처럼 가셨다.
 
 담쟁이 잎의 한 생애는 봄, 여름 가을이지만 어머니의 한 생애는 98년이셨다. 지나고 보면 한 생애의 길이는 담쟁이 잎이나 어머니나 모두 같은 것이었다. 시공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소파 한쪽에 앉아서 빨래한 옷을 개키던 어머니가 안 보인다. 번번이 안 계실 줄 알면서 고개를 둘러본다. 한참 후 나는 조용히 엄마! 하고 불러 본다. 온 세상이 뿌옇다.
 
올해도 양귀비가 꽃망울을 올렸다. 해마다 5월이면 뒤뜰에서 어머니의 눈을 환하게 밝혔던 꽃. 어머니날쯤에는 만개할 것이고, 낙하산 같이 펄럭거리는 주황색 양귀비꽃 한 다발을 꺾어 들고 나는 어머니에게 갈 것이다. 어머니는 전처럼 양귀비를 보고 환해질 것이고 내 손도 반갑게 잡으실 것이다. 그러면 나는 엄마가 많이 그리웠다고 말할 것이다. 

조성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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