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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너는 중요해

어릴 적에 영어를 배울 때 헬로, 오케이 수준을 넘어서 원어민 발음을 처음 흉내 냈던 말이 ‘워츠 매리 유’ 였다. ‘What’s the matter with you?’를 빨리 발음하는 소리가 내 귀에 그렇게 들렸다. 우리말로 ‘뭐가 문제야?, 무슨 일 있어?’라는 뜻. ‘What’s the problem?’과 거의 같은 의미.
 
이민진(Min Jin Lee, 1968~ )은 7살 때 부모와 함께 이민 온 후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 법대를 졸업하고 잠시 변호사로 일했다. 그녀가 20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쓴 소설 ‘Pachinko, 파친코’를 애플 TV가 제작해서 2022년 3월 25일에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8부작을 몰아쳐 보았다.
 
그녀는 예일 대학 2학년 때 일본을 다녀온 선교사가 학교 교회에서 들려준 경험담이 소설을 쓴 계기가 됐다고 인터뷰에서 밝힌다. 선교사에 의하면, 한 13살의 한인 학생이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는 것. 부모가 유물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중학교 졸업앨범에 일본 학생들이 올린 글의 내용이 이렇다. - “네가 있던 데로 돌아가라.” “너를 미워한다.” “너는 김치 냄새가 난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소설은 한일합병 이후 80년에 걸쳐 4세대가 펼치는 가족 드라마다. 이민진은 일본인 남편과 한동안 일본에 살면서 수십명의 자이니치(在日) 한국인을 인터뷰한 결과 원본을 대폭 수정한다. 2017년에 출간되어 뉴욕타임스 베스트 셀러, 영국 BBC 등에서 ‘올해의 책 10권’으로 선정된다.
 


주인공 선자는 부산에서 어렵사리 하숙을 치며 살아가는 부모에서 태어난다. 그녀는 자기를 불량배들에게서 구출해 준 멋진 한국 남자 생선 중매상인 한수와 사랑에 빠진다. 임신한 후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단호하게 작별을 고한다. 그녀의 사연을 동정하는 목사와 결혼하여 한수의 아들을 출산한다.
 
이민진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때 내 이야기가 좀 더 중요하다고 느꼈을 걸 그랬어요… 당신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남들이 말했는지 몰라요… 당신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걸 생각하며 나는 엄청 흥분하지요.”
 
‘matter’를 사전은 ‘문제, 상황, 문제가 되다, 중요하다’로 풀이한다. ‘What’s the matter with you?’는 짜증스럽게 들리지만, ‘Your story matters.’ 하면 고맙고 황송한 기분이다. ‘You matter, 너는 중요해’. 그 반대는 ‘You don’t matter, 너는 상관없어’. 이때 상대는 더없이 묵살당한다. 자존감의 박탈이 크나큰 심리적 상처를 남기는 법.
 
‘파친코’는 이렇게 시작한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가 우릴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matter’는 ‘mother’와 말뿌리가 같다. 그래서 ‘alma mater’를 모교(母校)라 번역한다. 어미 母!
 
발음이 거의 똑같은 ‘history’와 ‘story’는 중세영어에서 15세기까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역사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허구다. 그것은 강자가 후세에 남기는 변명이다. 비양심적인 정치 강국이나 정당이 역사를 위조한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
 
애오라지 당신의 이야기와 과거를 문제 삼아 당신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란 한 사람을 향한 호감에서 온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나의 성향은 나의 히스토리, 나의 과거에서 비롯한다는 학설이 내 알뜰살뜰한 스토리텔링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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