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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살아남은 자의 증언

“그런데 나라를 왜 빼앗겼어요?”
 
우리 반 해찬이가 유창하지 않은 한글 실력으로 당당하게 물었다. 잠시 나는 당황했다. 근본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3·1절이 다가오면 태극기를 흔드는 조선 사람에게 총을 쏘고 무자비한 고문을 했던 일본인들의 만행과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했던 일본인들의 탄압에 대해 설명해왔던 나였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업적을 강조하며 지금의 한국의 발전은 타인종에 비해 성실하고 우수한 창의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던 나에게 해찬이가 사실을 털어 놓으란다.
 
왜 나라를 빼앗겼냐고? 그러게 말이다. 일본의 침략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던 관리들의 권력욕이다. 영국과 미국 등 강대국을 움직이며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과의 조약 체결 뒤에는 그것을 협조한 썩은 관리들이 있었기 때문 아닌가. 세계의 판을 읽도록 왕을 보필해야 하는 관리들이 백성이야 어떻게 살든 말든 자기들의 권력만 차지하면 그뿐이라는 이기심이 36년이라는 치욕의 시간을 만들었고 일본의 수탈을 피해 굶주린 백성들이 만주로, 하와이로 멕시코로 조선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5년 전이다. 나는 LA폭동 25주기를 위한 다큐멘터리 작업에 합류하게 되었다. 자금은 KBS공용미디어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유건식 사장(당시 KBS아메리카 사장)의 추진으로 다큐를 제작하게 되어 나는 작가로 일을 하게 됐다. 감독들과 함께 일정을 짜고 폭동 당시의 증언을 듣기 위해 관계자들을 섭외하고 인터뷰를 진행해서 ‘끝나지 않은 6일, 4·29’라는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그때까지 다큐멘터리 현지 촬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자긍심을 갖고 참여했다. 처음에는 계약 조건에 없었는데 자막을 영어로 넣어야 한단다. 그걸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일이지만 바쁘다는 딸을 꼬드겨 간신히 영어로 된 자막을 완성하게 된 그때의 고생이 새삼스럽다. ‘다시는 능력에 맞지 않는 일을 하지 말라’는 딸의 엄포에 그 비위를 맞추느라 진땀 꽤나 흘렸다. 애초에 작정했던 일정보다 영상 편집이 늦어지고 감독은 자기 일은 제쳐 놓고 밤샘 작업으로 4·29에 방송이 나갈 수 있도록 열정을 쏟았다. 5년 전의 일이다.
 
LA폭동은 흑인과 백인의 갈등 사이에서 애꿎게 한인들이 피해를 당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흑인들이 백인에 대한 자신들의 불만이 생길 때마다 한인들에게 화풀이할 거라는 예측도 가능한 일이다.
 
뿌리교육을 강조하는 한글교육이기에 3·1운동 등 한국역사에 대해 학생들에게 설명하지만 이민 자녀들에게 먼저 알려야 할 일은 LA폭동이다. 백인과 흑인들 사이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한인들의 위치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그들의 미래도 안전하지 않다. 폭동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은 증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해찬이처럼 물어야 한다. 흑인과의 관계 개선에 뒷짐을 지고 있는 백인사회가 LA폭동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권소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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