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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우리는 잊혀져도 4·29는 기억돼야 한다’

장연화 사회부 부국장

장연화 사회부 부국장

“우리는 잊혀져도 사이구(4·29)는 기억해야 한다. 그게 사이구 세대 자녀들의 할 일이다.”
 
한인 1세대 영어권 기자로 활약한 이경원(94)씨가 딱 10년 전 들려준 말이다. 그는 4·29 LA폭동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보도한 언론인 중 한 명이다. 그가 본 LA폭동의 원인은 단순히 로드니 킹을 폭행한 경찰들에게 무죄가 선고되고 흑인 소녀 나탸사 할린스를 사망케 한 두순자씨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기 때문은 아니다.
 
80년대 초부터 흑인 커뮤니티에서 발행하는 신문들마다 ‘한인 상인들이 흑인 지역을 점령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꾸준히 보도됐었다. 심지어 일부 신문에선 정부에서 한인들에게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루머성 기사도 나왔다. 그러한 주류 언론의 보이지 않은 선동과 차별이 폭동을 일으킨 도화선이 된 것이라고 그는 말했었다.  
 
그는 “백인들의 노예로 살아왔던 삶에 대한 아픔을 다 치유하지 못했던 흑인들은 이런 기사들을 통해 한인들에 대한 반감을 차곡차곡 쌓아갔다”며 “하지만 영어 구사 문제 등의 이유로 커뮤니티간의 대화는 없었고 서로간의 불신만 커지다 보니 폭동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에도 한인과 흑인 커뮤니티 간에 골이 남아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폭동으로 불탄 상점들은 재개발 등의 이유로 복구됐지만 커뮤니티간의 골은 여전히 있다. 4·29의 역사를 기록하고 남기는 일만이 미래의 한인사회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든 예는 유대인의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을 위한 박물관 건립이었다. 나치 전범을 아직도 추적해 처벌하고 피해자를 위한 기념관을 건립하는 유대인들의 역사 보존 활동을 한인 커뮤니티가 본받아야 할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연방 의회도 2차 대전 당시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강제수용시켰던 과거를 사과했다. 또 일본 커뮤니티는 LA다운타운에 박물관을 건립해 당시 역사를 후손들에게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 역시 이 같은 절차를 밟아 4·29에 대한 역사를 남겨야 한다”고 조목조목 이유를 들었다.  
 
한인사회가 4·29 LA폭동 발생 30주년을 맞아 다각도로 되돌아보는 행사들을 많이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예년처럼 행사 위주의 날로만 보낸 것 같다. 굳이 다른 점을 꼽는다면 기존에는 한인커뮤니티 중심으로 한인타운에서 진행됐다면 올해는 흑인 커뮤니티에서 좀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묻고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단체와 행사는 거의 없다.  
 
폭동 30주년을 맞아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연락한 단체 관계자는 책임을 묻는 행동을 취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느냐”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관계가 조금 나아졌는데 ‘피해보상’이나 ‘책임’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좋지 않다”고 했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누구에게 좋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이제 30년이 흐른 만큼 잊어도 된다는 사고가 커뮤니티 곳곳에 팽배하다. 당시 고통 당했던 한인 피해자들에 대한 생각과 배려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경원씨의 조언과 지적은 의미가 있다.  
 
그는 “LA시의 주인은 이민자 커뮤니티다. 백인과 흑인으로 나뉘던 패러다임은 없어졌다. 이제 우리의 역사를 미국 사회에 올바르게 전달해 당당하게 정부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일은 2세와 3세들의 몫”이라고 했다.  
 
그의 외침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한인 커뮤니티에 퍼지길 기대해본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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