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한국형 FBI’가 낳은 ‘한국형 후버’
미국에는 한국의 13만 국가경찰과 같은 연방 경찰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미국 독립 직후인 1789년 의회가 법원조직법을 제정하며 연방 검사와 함께 창설한 연방보안관(US Marshal)이 최초의 연방 법집행기관이다. 연방 법무부 장관(검찰총장) 소속이다. 주 임무도 연방 죄수를 호송하고 수배자를 체포하고 연방 증인을 보호하고 압류 자산을 관리하는 등 우리 검찰에 가깝다. 각 주가 모여 합중국을 구성한 미국엔 주와 시·카운티·타운마다 자치경찰(또는 보안관)이 있기 때문이다.1908년 창설된 법무부 수사국이 모태인 연방수사국(FBI) 역시 경찰이 아니다. FBI 구성원은 특별 수사관이고, 별칭이 ‘지맨(Government man)’이다. 연방정부 요원이란 뜻이다. 반독점법 위반, 금융·토지사기, 특허범죄 등 신종 연방 범죄와 무정부주의와 같은 국가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연방 기구의 필요성에 탄생한게 FBI였다. 그전까지 법무부는 자체수사 인력 없이 매번 재무부 산하 위폐 단속 조직인 비밀조사국(Secret Service·1865) 요원을 빌려 쓰다가 당시 의회가 제동을 걸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법무장관이 직접 요원을 채용해 상설 조직을 만들도록 했다. 이후 국세청(IRS)에서 금주법을 집행하는 밀주단속국을 법무부로 이관받아 흡수하면서 FBI는 점점 커졌다. 마피아의 대명사인 알 카포네와 전쟁을 벌인 그 조직이다.
하지만 FBI는 1924~1972년 무려 48년간 종신 수장을 지낸 에드거 후버 국장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다. 그는 FBI를 세계 최고 수사기관이자 국내 정보 기구로 키웠지만 동시에 할리우드 배우부터 대통령까지 사찰한 권력남용의 대명사였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1930년대부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정보수집 허가를 받아 극우 및 공산주의자란 혐의를 두고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도청과 사찰을 벌였다. 심지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노어 여사를 시작으로 트루먼·아이젠하워·케네디·존슨·닉슨 등 후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사생활과 국정 전반을 도청하기도 했다. 트루먼과 케네디 등이 후버를 여러 번 해임하고 싶어했지만 그때마다 ‘후버 파일’의 위협에 뜻을 접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권 비대화 때문에 70년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대신 ‘한국형 FBI’를 만들겠다고 한다. 한국형 FBI 구상대로 제도를 수입하면 ‘후버’란 괴물도 따라올 경우 견제 장치는 어떻게 할 건가. 그보다 당장 2024년 국정원 안보수사권을 이관받는 FBI 몇 배 규모의 치안·수사·정보기관이 탄생하는데 아무 대책이 없다.
정효식 / 한국 사회1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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