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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깜짝 파티였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노인 마을입니다. 그런대로 길도 널찍하고 관리와 조경도 깔끔하여 마음에 듭니다. 제가 이 단지를 선전하러 나선 복덕방쟁이는 아니고요, 자랑할만한 것이 많아 만족하며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좋은 친구도 이웃도 많이 만났습니다. 특히 앞집 뒷집을 가릴 수 없게 뱅글뱅글 돌다 보면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는 동네 분들과의아침 인사가 좋은 하루를 열어주는 한 잔의 아침 커피 맛을 느낍니다. 처음 이사 들어왔을 때 노인들만 보이는 동네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너도 노인네들 중에 하나라고 군밤을 먹였을 때 정신을 차려야  했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달 반전 앞집에 홀로 사는 노년 홀아비 총각으로부터 청첩장 같은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초대장 내용에는 그냥 ‘Celebration Day, 축일’이라고 쓰여 있었고 엄마와 아들, 딸 세 분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고 선물은 사절이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좀 수그러진 팬데믹에서 모두 박차고 일어나 한바탕 놀아보자는 의미로 눈치챘습니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우리 앞 뒷집 친구들과 우리 부부도 비슷한 마음으로 수수한 드레스 코드 차림으로 파티장에 갔습니다. 와! 그렇게 큰 파티라고 기대를 안 했었기에 잠깐 혼란스러웠습니다. 예상 밖으로 100여 명이나 되는 손님들 숫자에 놀랐고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젊은이도 보이지 않는 손님 모두가 순 노인네들이라는 점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동양인으론 저희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칵테일 시간에 또 놀라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맛있고 어딘가 등급이 다르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미국사람들 잔치에서 상상도 못 했던 색깔도 고운 우리들의 빨간 김치를 보며 지금 여기가 어딘가? 잠시 착각에 빠졌었습니다. 라이브 밴드에 맞추어 등장하는 주인공은 신랑·신부가 아닌 87세 어머니와 양쪽에 아들과 딸 세 사람의 입장이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늙어가는 아들과 딸 세 사람이 팔짱을 끼고 음악에 맞추어 입장 했을 때 그 다정한 모습에 가슴이 벅차 눈물이 고였습니다.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50여 년을 살며 다른 문화를 접하고 배우려고 노력을 했으나 세대를 따라 새롭게 변해가는 또 다른 문화 속에서 길들이기란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기회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어느덧 다 커서 미국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한국 부모로서 한국말을 가르치지 못한 점에 지금 와서 많이 후회합니다. 부모로서 앞을 내다보는 지혜가 부족했음을 인제 와서 처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를 또 한 번 읊어봅니다.  
 
색다른 잔치에 참석한 그 자리에서 공연히 지난 50년을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래, 난 오늘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밴드에 맞추어 춤을 추며 즐기는 노인들 틈에 섞여서 춤을 추는 나를 의식하면서 나도 미국사람이 다 되었던가? 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 나라에서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온 이 땅에서 음식이나 습관이 아직도 한국 사람인 것은 문명합니다. 그러나 춤이란 말 하자면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겼던 유희가 아니었습니까? 그래도 늘 춤에 어색한 나였지만 이왕이면 오늘은 주눅 들지 말고 여기 노인네들과 함께 흔들어 보자 맘먹고 땀이 나도록 흔들어 보았습니다. 돌연 우리의 신나는 유행가 “라 랄라 내 나이가 어때서?”가 떠올랐습니다. 아, 다음에 또 이런노인잔치의 기회가 있다면 꼭 악보와 가사 번역을 들고 가서 밴드에 부탁하여 한바탕 노래와 가사에 흥을 돋워 노인들을 감동하게 하며 그리하여 살짝 내 나라를 알리고 싶다는 허튼 꿈을 꾸었던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남순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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