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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푸틴과 고르비

 러시아의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한다. 우크라이나의 많은 도시는 잿더미로 변했고 민간인 살상, 강간 행위가 횡행한다는 소식이다. 보도에 따르면 침략군은 아이들을 데리고 피란 길에 나선 엄마들이 대부분인 무고한 시민들을 향한 미사일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확전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외부 세계는 직접적인 참전을 기피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USSR, 1922~1991)을 구성하는 14개 변방 국가 중의 하나였다가 소련 붕괴와 더불어 독립한 국가이다. 맹주인 러시아는 소련  붕괴 후에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를 만들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CIS는 유명무실한 기구가 되고 말았다. 우크라이나는 CIS에 옵저버 격으로 참여하기는 했으나 정식 멤버는 아니었고 나중에 대표단을 전원 철수했다. 지정학적으로 우크라이나는 같은 슬라브계인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지만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지켜 온 자주 독립 국가이다.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고 20여년이 흐른 1980년 초에 소련 정계에는 매우 이색적인 한 정치가가 등장한다. 바로 USSR의 마지막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이다. 그는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만큼 기울어진 소련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자 개혁 개방을 외치며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미 소생할 수 없을 만큼 기울어진 경제를 회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1991년의 공산당 강경파의 쿠데타로 실각하고 USSR도 그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는다.
 


소련의 최고 권좌에 있는 동안 그는 세계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핵 탄두, 화학 무기, 중장거리 미사일 등을 포함한 군비 경쟁이 극에 달했던 냉전 시대(1980년대)에 그는 미국과의 지루한 협상을 통해 전략 무기 감축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힘겨운 노력에 힘 입어 세계는 숨 막히는 냉전 시대의 종식을 보게 됐던 것이다. 특히 독일에서는 그를 ‘통일의 아버지’의 한 사람으로 칭송하며 곧잘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당시 미국과 함께 세계 평화의 초석을 다지는데 크게 공헌한 그의 업적은  길이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현 대통령 푸틴은 소련의 옛 영광을 꿈꾸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가 내세우는 숭고한(?) 명분은 오만한 그의 자존심에서 나온다. 민간인 학살 등 전쟁의 참화는 세계 제일의 부자(순자산 약 2000억 달러 추정)로 알려진, 부패한 전 KGB요원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한편 올해로 91세가 되는 고르바초프는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9일에는 자신이 설립한 모스크바 국제대학 강연에서 푸틴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푸틴이 민주적인 개혁을 마다한 채 하향식 독재를 계속하는 것은 체제 붕괴의 길을 재촉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레이건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비디오를 유튜브에서 보았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레이건 및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어울려 워싱턴과 모스크바 그리고 아이슬랜드를 번갈아 방문해 가면서 어렵게 군축협상에 임하는 과정을 수록한 동영상이다. 잘 생긴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은 푸틴의 모습과는 무척이나 달랐다.

라만섭 / 전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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