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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을 곧장 연방의원 배출 '쾌거'로 승화

[LA폭동 30주년]
좌절 딛고 일어서다-성장하는 정치력

'정치력 부재' 절실히 느껴
정계 진출 한인들 잇따라
 
가주 한인유권자 20만명
각종선거서 목소리 커져
 
1992년 LA폭동이 촉발된 이유 중 하나는 한인 정치력 부재였다. 한인사회는 정치력 신장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폭동이 일어난 해에 한인사회는 단단히 뭉쳐 최초의 연방하원의원을 탄생시켰다.  
 


한인 정치력이 폭동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주류사회에 한인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정치인은 부족했다. 폭동 전·후 한인 정치력을 살펴봤다.
 
◆출발지점은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1958년은 미주 한인사에 있어 역사적인 해다. 장원배씨와 필립 민씨가 하와이 주 하원의원에 나란히 당선됐다. 한인 이민사 반세기 만의 첫 주류 정계 진출이었다. 장 전 의원은 이후 하와이주 판사를 거쳐 한인 첫 연방 판사에 임명되기도 했다.  
 
민주당의 알프레드 송(한국명 송호연) 변호사는 한인 정치사에 획기적인 인물이다. 1960년 캘리포니아 주의회에 진출한 최초의 한인이자 아시안인 그는 의정활동을 하며 아시안 이민자 커뮤니티 선구자로 떠올랐다. 1960년 변호사 사무실이 있던 몬터레이 파크에서 시의원에 당선됐고 이듬해 실시된 45지구 주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2년 뒤 28지구 주 상원의원 선거에 당선돼 1977년까지 16년간 의정활동을 했다. 그의 이름은 현재 LA 한인타운 윌셔-웨스턴 역에 새겨져 있다.  
 
◆폭동의 해 연방의회 입성했다
 
1992년 폭동으로 한인사회는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해 11월 미주 한인 이민 역사상 최초로 공화당 소속의 김창준씨가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는 쾌거를 일궈냈다. 앞서 1990년 다이아몬드바 시의원에 당선된 그는 다이아몬드바 시장으로 올라서며 한인사회의 스타 정치인으로 주목받던 터였다.  
 
김 전 의원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폭동은 한인사회의 참극이다. 그런데 이를 계기로 한인사회가 정치에 확 눈을 뜨면서 내가 반사이익을 받았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당시 한인사회가 많은 힘을 실어줘 당선될 수 있었다”고 했다. 한인 정치사에 있어 혁신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정치인생은 아쉽게도 조기 마감했다. 후배 양성에 신경 쓸 새도 없이 주류언론의 공격 속에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3선을 끝으로 정계 은퇴했다.  
 
오렌지카운티 가든그로브시에서는 한인 정호영 씨가 시의원에 당선됐다.  
 
◆강석희 어바인 시장 새 시대  
 
폭동 당시 주류 전자 스토어에서 매니저로 일했던 강석희(민주) 전 어바인 시장도 LA 폭동에 충격을 받아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한미민주당협회장과 오렌지카운티 한미연합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민주당을 중심으로 정계 인맥을 넓혀간 그는 2004년 27년간 거주하던 어바인에서 시의원에 도전해 당선됐다. 2006년 재선했고 2008년 한인 이민 1세 최초의 직선 시장이자 어바인시 사상 최초의 소수계 시장이 됐다. 이후 가주상원과 연방하원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연방 하원: 미셸 박, 영 김 시대
 
미셸 박 스틸 의원(공화)은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베테랑 정치인이다. 한인 최초로 가주 조세형평국 위원으로 선출돼 위원장도 역임한 뒤 오렌지카운티 2지구 수퍼바이저에도 선출됐다. 지난 2020년에 민주당 현역 의원 할리 루다를 누르고 연방의회에 입성하며 불패 행진을 이어갔다. 올해 연방하원 45지구에서 재선에 성공하면 6연승이다.  
 
에드 로이스 전 연방하원의원을 23년간 보좌했던 영 김(공화) 의원은 2014년 가주 하원 65지구에서 민주당 현역의원 셰런 쿼크-실바를 누르고 당선됐다. 2년 뒤 낙선했다가 2020년 연방 하원의원에 재도전, 현역의원 길 시스네로스를 상대로 신승을 거두며 박 의원과 함께 최초의 한인 여성 연방하원의원 대기록을 세웠다.  
 
◆주의회: 최석호와 데이브 민
 
어바인 교육위원을 거쳐 2004년 강석희씨와 함께 시의원으로 동반 당선된 최석호 의원(공화)은 2012년 어바인 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가주하원(68지구)에 도전한 최 시장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선거구 재조정으로 올해 73지구에서 4선에 도전한다. 현재 최 의원은 가주의회 하원 80명 중 유일한 한인이다. 이후 데이브 민(민주) 변호사가 지난 2020년 가주 상원에 입성해 역시 유일한 한인 상원의원(37지구)으로 활약 중이다.  
 
◆LA시의회: 존 이와 데이비드 류
 
2015년 데이비드 류가 한인사회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최초의 한인 LA 시의원이 됐다. 또 LA 12지구 토박이 존 이가 지난 2019년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LA 시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2명의 한인이자 아시안 시의원 시대를 열었다.  
 
2020년 선거에서 류 의원이 재선에 실패했으나 이 의원은 박빙의 승부 끝에 로레인 런퀴스트 후보와 재대결서 다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한 최초의 LA 한인 시의원 기록을 세웠다. 원래 공화당원이었던 이 의원은 현재 15명 시의원 중 유일한 무소속으로 ‘아웃사이더’ 정치인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나머지 14명은 모두 민주당원이다.  
 
◆가주 한인 유권자 20만 돌파
 
한인 정치인이 대거 배출될 수 있던 배경은 무엇보다 한인 유권자 증가에 있다. 캘리포니아 정치 분석 기관인 ‘폴리티컬 데이터’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가주 전체 유권자 2194만1364명 중 0.93%인 20만4805명이 한인이다. 한인 유권자는 급속도로 늘고 있다. 2016년 조사에서는 8만5594명에 그쳤지만 2020년엔 2배가 넘는 18만2071명을 기록했다가 다시 2년 만에 12.5%(2만2734명)가 늘어나 2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한인 정치 참여의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렇게 급성장하고 있는 한인 정치력은 지난해 한인타운 선거구를 단일화시키기도 했다. 10년 전 선거구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한인 커뮤니티는 지난해 영어권 1.5세와 2세 비영리 단체장들이 주축이 되어 한인타운 선거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단일화 지도 초안을 작성해 홍보하는 한편 관계자들과 접촉해 설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 수십년간 4개 선거구로 나눠져 있던 한인타운은 올해부터 단일화된 선거구가 됐다. 

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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