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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검이불루’의 정신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백제본기에서 온조왕 15년(BC 4년) 지어진 궁궐의 자태에 대해 남긴 말이라고 한다.
 
유홍준 교수에 따르면 ‘검이불루’의 정신은 조선의 궁궐까지 이어진다. 경복궁 건립을 주도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궁궐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성리학이 조선의 국가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검소함을 숭상하는 풍조가 궁궐 건축의 미학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종묘와 창덕궁 낙선재를 예로 들어보자. 종묘의 정전은 19칸이 옆으로 이어진 한국에서 가장 긴 목조 건물이다. 단정한 형태의 맞배지붕을 올려 차분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2012년 한국을 방문해 종묘를 둘러본 뒤 “심플하고 스트롱하지만 미니멀리즘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얀 눈이 쌓인 종묘는 검이불루의 정신을 체감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낙선재는 궁궐 전각이지만 단청을 칠하지 않았다. 대신 격자무늬, 만자무늬, 능화무늬, 사방연속무늬 등의 창살을 두루 사용했다. 소박하지만 격조 있는 치장이 돋보인다. 낙선재의 건축 미학을 표현하기에 화이불치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다.
 


집을 지을 때뿐이겠는가. 옷을 짓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서민들이 주로 입던 무명옷을 입고 생활했다. 자신이 무명옷을 입는 이유에 대해 정조는 일득록에서 “옛사람이 이르기를, ‘검소함에서 사치로 가기는 쉬워도 사치에서 검소함으로 가기는 어렵다’고 했으니, 이것이 경계해야 할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정결하되 궁색하지 않은 의복의 예를 갖춘 것이다.
 
사실 격조 있게 검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고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무릇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집을 새로 짓든, 고쳐 살든. 옷을 비단으로 짓든 무명으로 해 입든. 지도자의 행실이 국가의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중용의 미를 명심했으면 한다.

위문희 / 한국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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